미국 불법체류자 ‘묻지마 살인’ 이민개혁에 또다른 불씨

미국 불법체류자 ‘묻지마 살인’ 이민개혁에 또다른 불씨

입력 2015-07-06 07:38
업데이트 2015-07-0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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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민자 ‘피난처 정책’ 논란…연방기관-지방경찰 갈등

트럼프 ‘불법체류자 독설’과 맞물려 정치쟁점화 조짐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멕시칸 불법체류자의 ‘묻지마 살인’이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이민정책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 행정명령이 법원의 제동으로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이른바 ‘피난처’(Sanctuary)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연방 국토안보부(DHS) 산하 이민관세수사청(ICE)과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시 경찰 간 불법 이민자 처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재점화하고 있다.

이는 텍사스에 거주하는 멕시칸 프란치코 산체스(45)가 지난 1일 오후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에서 산책하던 캐스린 스타인리(32·여)에게 총을 쏘아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산체스는 중죄(felony) 전과가 7건 있으며 5차례 멕시코로 강제로 송환된 전력이 있는 불법이민자로 밝혀졌다. 그의 중죄 전과 7건 중 4건은 마약 관련 사건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멕시코로 강제송환된 것은 2009년이었으며, 텍사스에서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보호관찰 대상으로 분류돼 있었다.

ICE는 산체스가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 직후인 올해 3월 26일 그의 신병을 한때 확보했으나, SFPD가 산체스에 대해 마약 사건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였으므로 그의 신병을 SFPD에 넘겼다.

ICE는 당시 SFPD에 산체스가 석방되면 사전에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통보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산체스를 체포했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돼 산체스는 카운티 구치소에서 4월 15일 풀려났다.

카운티 구치소는 산체스의 석방 사실을 경찰에 통보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ICE에도 통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산체스의 석방 사실이 경찰이나 ICE에 통보되지 않은 것은 샌프란시스코 시가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피난처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샌프란시스코 시는 1989년 조례를 통해 연방정부 업무인 불법 체류자 단속을 중지하고 불법 체류 신분과 국적만으로 수색·구금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피난처 조례’를 제정·시행했다.

피난처 조례는 1980년대 중·남미 각국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탄압과 박해를 피해 넘어온 난민들을 구제해주기 위한 목적에서 입안된 것이다.

과거 ICE는 각 지자체와 지역 경찰에 불법 이민자의 신병을 확보해 넘겨달라는 ‘구금 요청서’를 보내고 지자체와 지역 경찰의 협조를 받아 이들을 추방하거나 구금해왔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 미 전역의 수백여 개 카운티와 도시들에서 피난처 정책을 시행하면서 범죄 혐의가 없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신병 확보와 구금이 금지했다.

그 근거는 ‘정부에 의한 부당한 수색·체포·압수로부터 국민 기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수정헌법 4조에서 나왔다. 꼭 필요하다면 지자체나 지방 경찰이 아닌 연방 기관인 ICE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ICE가 해야 할 업무를 지자체가 인력과 예산을 들여 떠맡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도 깔려있다.

에릭 가세티 로스앤젤레스(LA) 시장이 지난해 7월 LA시 경찰국(LAPD)에 불법 체류자를 체포해도 연방 이민국에 신병을 넘기지 말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A시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늘어나는 불법 체류자 단속 업무가 지방 정부의 치안 업무와 예산 집행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정부가 2012년 불법 체류자를 붙잡아 ICE에 신병을 넘기는 데 쓴 비용은 2천600만 달러가 넘었다.

산체스가 저지른 ‘묻지마 살인’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연방기관인 ICE와 샌프란시스코 지자체 간 책임 공방도 나타나고 있다.

ICE는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시 경찰이 중죄 전과자의 신병을 소홀히 했다고 비판한 반면, 샌프란시스코 카운티·시 경찰은 “ICE가 산체스의 구금현황을 알고 있었으면서 법원에 체포영장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계 이민자들을 마약범죄자와 성폭행법에 비유한 막말 논란과 맞물려 정치적 쟁점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오마바 대통령의 이민개혁에 지지하는 정치단체들은 “몇몇 정치인들이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이에 이민개혁 반대를 주창해온 정치단체들은 “중죄 전과 7범인 불법 체류자가 추방되지 않으면 누가 추방될 수 있느냐”면서 정치적 호재로 삼을 기세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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