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 관계 재정립 계기 마련…대만 대선 영향은 제한적
중국과 대만이 분단 66년만의 첫 정상회담으로 양안의 정치적 통일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은 중국공산당이 활동을 시작한 1920년대부터 국공내전과 냉전시기 대립 등을 거치며 100년 만에 양안관계를 재정립할 계기를 마련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馬永九) 대만 총통의 7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중국과 대만을 이끄는 수뇌가 얼굴을 맞댄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양안은 1992년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 이후 24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경제 측면에서 단순 협력을 넘어선 단계로까지 발전했으나 정치, 군사 방면에서는 양안의 거리는 멀고도 멀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정상이 서로를 국가원수이자 정부 대표로 인정하고 만나는 순간부터 양안관계의 어제와 오늘은 달라지게 된다.
먼 훗날 중국과 대만의 완전한 통일이 이뤄질 때 양안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날이 통일의 거대한 바퀴를 굴리기 시작한 첫 날로 기록될 것으로 양측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두 정상은 이 같은 정치적 함의보다는 대만 대선에서 우세를 이어가고 있는 독립 성향의 민진당을 겨냥해 ‘하나의 중국’을 주창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양안 통일은 당장은 이뤄지기 힘든 요원한 과제다.
◇ 중국·대만 양안관계 재정립 계기되나
두달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시진핑 주석의 미국, 영국 방문, 독일, 프랑스 정상의 방중, 리커창 총리의 한중일 정상회의,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베트남, 싱가포르 순방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숨가빴던 외교활동이 결국 양안 정상회담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만큼 중국에는 대만과의 양안관계 설정이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할 수 있다. 미중간의 관계도 결국 대만 문제로 귀결된다는게 중국의 판단이다.
앞으로 중국과 대만의 관계는 대만의 대선결과와 차기 총통의 대중국 정책의 여하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요도 면에서는 격상될 여지가 다분하다.
특히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된다는 지적에도 정부 대 정부, 국가원수 대 국가원수 자격의 회담을 받아들이며 이번 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했다는 것 자체가 중국의 대(對) 대만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설령 이번 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회담에서 아무런 실질적 성과가 없이 악수만 나누고 식사만 했더라도 만남 자체의 의미가 크다는게 중국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정융녠(鄭永年) 싱가포르국립대 동아연구소 소장은 “시 주석과 마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무엇을 토론하고 어떤 성과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이들의 만남 자체가 매우 큰 돌파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두 지도자가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국기를 내걸지 않은채 표면적으로나마 대등한 위치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진행한 것도 양안 지도부의 생각이 열려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렁포(冷波) 중국사회과학원 대만연구소 부주임은 “마 총통 취임 이래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 양안관계가 발전을 거듭하며 정치적 상호신뢰가 깊어진 결과가 이번 회담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대만은 최근 네덜란드 상설중재재판소(PCA)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 필리핀의 제소를 수용하자 ‘인정불가’ 입장을 표명하며 중국과 공조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지속적인 협력과 교류를 통해 ‘양안 통일’이라는 또다른 ‘중국의 꿈’(中國夢)을 꾸기 시작한 단초를 마련했다. 민족적 감성에 호소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잠시 내려놓고 국제무대에서 두 국가가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현실의 중국’을 인정한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회담 내용에서 보듯 양안이 ‘두개의 중국’을 인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 주석과 마 총통 모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一中各表)하기로 한 ‘92공식’(九二共識) 견지를 재확인했다.
양안은 여전히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름에서 동상이몽인 상태다.
◇ 대만 대선에 영향 미치나…선거 영향은 제한적
현실 정치에서 국공 영수회담의 관례를 깨고 중국이 양안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든 직접적인 배경은 그동안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국민당이 정권 교체의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당은 지난달 훙슈주(洪秀柱) 후보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고 주리룬(朱立倫) 주석을 새로운 대선후보로 선출했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국민당 후보를 크게 앞서면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현재 민진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인 ‘92공식’을 부정하고 독립노선으로 기울고 있어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양안 관계는 다시 과거의 갈등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만의 현 국민당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양안관계의 중요성과 긴밀성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북풍’(선거개입)인 셈이다.
니융제(倪永杰) 상하이대만연구소 부소장도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이 대만 유권자로 하여금 어느 후보가 양안관계의 발전과 안정을 추진하는데 유리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단지 중국이 내년 1월 대선에서 패색이 짙은 국민당 후보를 지원 사격하는 용도로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단견일 수 있다. 이미 대선 판세는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로 야당인 민진당의 당선이 점쳐지고 있다.
중국도 현재의 국민당이 판세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차기 총통으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차이 주석에게 지나친 독립 추구에 대해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양안 정상회담의 정례화 문제를 논의하며 민진당측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며 독립노선을 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총통이라도 만남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는 것이다.
차이 후보도 “총통에 당선된다면 시 주석과 만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민당이 역전을 통해 다시 정권을 재창출하게 되는 시나리오를 최상으로 보고 있지만 민진당에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대만 독립이라는 마지노선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이 회담 석상에서 “양안의 최대 위협은 대만독립 세력”이라고 규정한 뒤 “대만 독립세력은 양안의 평화발전을 저해하고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 것도 사실상 민진당을 겨냥한 경고였다.
대만의 독립파 지도자였던 천수이볜(陳水扁) 민진당 후보가 지난 2000년 총통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중국과 대만은 이듬해 1월 대만 진먼다오(金門島)·마쭈다오(馬祖島)와 중국 푸젠(福建)성에 한해 ‘소삼통’(小三通:통항·교역·우편거래)을 실시했다.
그해 11월엔 대만이 중국인들의 대만 방문을 부분 허용하는 등 천 전 총통 시절 초반에는 중국과 대만이 밀월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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