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 내부 엇박자…위기 넘겨 더 큰 기회 맞을 수도
독일 대연정의 난민정책을 둘러싼 갈등 증폭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 위기 지수를 극점으로 밀어올리고 있다.포용 유지를 앞세우는 소수당 파트너 사회민주당의 반발, 그리고 통제 강화를 요청하는 원내 단일 자매보수당 기독사회당의 불만에 겹쳐, 포용의 한계를 강조하는 자당 기독민주당의 엇박자가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발단은 같은 당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의 난민 통제정책 강화였다. 그는 지난 6일(현지시간) 시리아 난민에겐 2년간 가족을 데려오는 것을 선별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슈테펜 자이베르트 정부 대변인이 진화하고 나서자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데메지에르 장관은 유럽연합(EU) 권역으로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발 디딘 나라에서 망명 신청 절차를 밟도록 규정한 더블린조약의 재적용 사실도 알리고, 이미 지난달 21일부터 시리아 난민들에게 다시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지난 8월 21일 난민 환대를 내세워 유보하기 시작한 이 조약의 재적용은 독일로 들어오기에 앞서 거쳐온 그리스를 제외한 첫 등록 국가 등으로 난민을 되돌려 보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크리스티아네 비르츠 정부 부대변인은 곧바로 이는 내무부의 단독 결정으로서 메르켈 총리가 보고받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난민정책의 전환으로 해석돼선 안 된다고 또다시 상황을 정리했다.
메르켈 총리가 보고도 받지 않은, 나아가 대연정 내부 토의도 거치지 않은 데메지에르 장관의 단독 플레이라는 설명이었지만 메르켈 총리는 이 결정을 추후 지지했고 사민당은 공식성을 띤 확연한 반대 견해를 표출하지 않았다.
이는 애초에 등록 없이 독일로 유입된 난민이 많은데다 등록을 했어도 해당국이 수용해야 가능한 송환 조치의 실효 역시 극히 제한적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연결된다. 즉, 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처방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방치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데메지에르 장관의 나홀로 질주는 메르켈의 리더십에 상처를 안기고 포용과 통제를 매개로 하는 갈등 전선을 확장하고 있다.
그 점에서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12일 “데메지에르가 메르켈을 기만했다”고 보도하면서 메르켈 총리가 대연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는 야당 대표의 언급을 전한 것은 메르켈 리더십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와중에 메르켈에 버금가는 기민당의 간판인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난민위기를 ‘눈사태’에 비유하며 데메지에르 장관에게 힘을 실어줘 정치권의 논란을 촉발했다. 절박한 위기론을 내세워 통제 강화의 명분을 제공하고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눈사태 발언은 즉각 “비관적인 언급은 위험하다”(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긴급 상황에 놓인 이들은 자연재난이 아니다”(사민당 소속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 “난민들의 품격을 해치는 비유다”(사민당 야스민 파이미 사무총장) 같은 비판을 불렀으나 통제론 모드를 강력하게 이끌었다.
또 오는 20일 전당대회를 치르는 기사당이 난민정책 초안에 난민 수용 상한선을 설정하자는 내용을 넣었다는 현지 보도가 진실이라면, 진작에 이 안이 메르켈에 의해 배척됐던 것임을 고려할 때 메르켈의 허약한 권위를 보여주는 또다른 증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일었다.
그러나 오스카어 니더마이어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교수는 권력투쟁적 시각으로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안 된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그는 메르켈의 총리직과 당수직을 대체할 경쟁 인물이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일부에선 메르켈보다 먼저, 총리 물망에 올랐던 적이 있는 쇼이블레의 대망론을 말하지만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뤘고 권력의지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리더십을 다시 세우고 위기를 돌파하려면, 쇼이블레 장관의 지지를 얻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마인츠대학의 위르겐팔터 정치학 교수는 블름버그 통신에 말했다.
쇼이블레 장관은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때에도 그랬지만, 각론에선 메르켈 총리와 차이를 보여도 큰 방향에선 항상 유사한 답을 내며 보조를 맞춰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이번에도 포용의 큰 기조를 유지하되 세부 통제를 보강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메르켈 총리의 반 발짝 앞에 쇼이블레 장관이 있다는 분석은 그래서 유효하다.
따라서 미국 저먼마셜펀드의 티모 로호키 연구원이 블름버그에 말한대로 메르켈의 난민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앞으로 6개월에 걸쳐 난민 유입이 줄면 위기에 몰린 메르켈 총리에게 더 큰 기회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메르켈 총리는 실제로 13일 제2공영 ZDF TV에 출연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재차 강조하고 “연방총리인 내가 모든 상황과 대연정을 통제 하에 두고 있다”며 통제력 상실 관측을 부정했다.
그는 또한 쇼이블레 장관은 최상의 동료라고 확인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난민위기 대응은 “신임투표(인기 얻기)가 아니라 내가 제시한 길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난민정책이 확실하게 성공하려면 EU 차원에서 난민 질서를 새롭게 규율하는 합의가 한층 체계적으로 정리돼야 하고 터키 등 관련국들의 협조가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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