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인상> 채권시장, 위기의 뇌관되나

<美 금리인상> 채권시장, 위기의 뇌관되나

입력 2015-12-17 09:22
수정 2015-12-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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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거의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림에 따라 미국의 금리 인상이 세계 채권시장의 불안을 확대시킬지 주목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1994년 ‘채권 대학살’ 사태와 2013년 신흥국 ‘테이퍼 텐트럼’ 때와 같은 불안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이미 채권시장에서 고금리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불안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채권시장이 2008년 겪은 금융위기와 같은 또 다른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자금유출 시작됐다”…고금리채권은 ‘펀드런’ 우려도

세계 채권시장의 자금 유출은 고금리회사채 펀드를 중심으로 이미 시작됐다.

국제금융센터와 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 3~9일 한 주간 채권형 펀드에서 61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이는 전주의 25억 달러 순유입에서 2주 만에 순유출로 전환된 것이다.

특히, 북미를 중심으로 한 고금리채권형 펀드에서 38억 달러가 순유출돼 가장 많은 자금이 북미 등 선진국 시장에서 빠져나왔다.

지난 4주간 전체 채권형 펀드에서 유출된 자금은 107억달러에 달한다.

신흥국은 남미 채권형 펀드를 중심으로 9주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으며 올 들어 선진국대비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 신흥국 채권형 펀드로는 236억달러가 순유출됐고, 선진국 채권형 펀드로는 1천18억달러가 순유입됐다.

최근 채권시장의 자금 유출은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고금리 회사채(정크본드)의 어려움 때문으로 풀이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올해 들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은 기업은 102개사를 넘어 200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 중 60%가 에너지와 천연자원 관련 기업이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관련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일주일 사이 서드 애비뉴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몇몇 정크본드가 유동성 압박에 펀드 환매를 중단하면서 위기가 증폭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과 14일 2거래일간 대표적인 고금리 채권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쉐어스 아이박스 달러 고금리 회사채(HYG)’와 ‘SPDR 바클레이즈 고금리회사채 ETF(JNK)’ 가격은 모두 3% 가량 급락했다.

퍼포먼스 트러스트 캐피털 파트너스의 브라이언 배틀 트레이딩 부장은 더 많은 정크본드들이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라며, 특히 위험한 단기은행 대출이나 에너지 관련 회사채에 투자된 펀드들의 어려움이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크본드 시장을 줄곧 경고해온 월가 대표적 헤지펀드 투자자 칼 아이칸은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고금리 ETF의 “매도가 이제 막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신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군드라흐 더블라인 캐피털 창립자도 정크본드 가격 하락을 경고하며, 이런 환경에서의 금리 인상은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 1994년 ‘국채 대학살’ 때와 달라…2008년 금융위기 재현 경고도

당장 미국의 금리 인상은 시장이 충분히 예견해왔다는 점에서 놀랄만한 이벤트는 아니다.

이 때문에 1994년 갑작스러운 금리 인상으로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한 당시와는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연준은 1994년 2월에 사전 예고도 없이 기준금리를 올려 국채 가격을 폭락시켰다. 당시 11월까지 금리를 6차례 더 인상해 1년 만에 기준금리는 두 배인 6%까지 올랐다. 갑작스럽고 빠른 금리 인상은 결국 미국 국채가격을 폭락시켜 이른바 ‘1994년 국채 대학살(bloodbath)’을 초래했다.

당시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2.3%포인트 급등해 8.1%까지 올랐다.

최근 채권 시장이 타격을 받은 경우는 2013년 ‘테이퍼 텐트럼(긴축 발짝)’ 때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의회 증언에서 예상보다 일찍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 있다고 언급해 신흥국의 주식, 채권, 외환 시장을 뒤흔든 바 있다.

당시엔 헤지펀드들이 국채가 오를 것에 베팅해오다 예상치 못한 긴축 발언에 투매에 나서면서 국채가격을 폭락시켰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예고된 것이고, 인상 속도가 점진적일 것으로 예상함에도 채권시장의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 불거진 정크본드의 투매가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보고서에서 뮤추얼펀드 운용사 서드 애비뉴의 정크본드 환매 중단을 언급하며, 이는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이 악화함에 따라 자산 매각이 어려워져 청산이 촉발된 것이라면서 앞으로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7년 8월 9일 증권화 상품에 투자하는 개방형 뮤추얼펀드에 대한 환매 거부와 함께 시작했다”며 과거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BNP파리바 사건’을 상기시켰다.

2007년 BNP파리바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손실이 확대되자 펀드의 가치평가가 어렵다며 펀드 환매를 중단해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 당시 사건은 결국 이듬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이어졌다.

퍼포먼스 트러스트 캐피털 파트너스의 브라이언 배틀 트레이딩 부장은 “서드 애비뉴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목격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회사채 디폴트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일부 고위험 회사채 시장에 국한돼 위기가 증폭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BNP파리바가 환매 중단한 펀드는 투기등급 모기지 채권에 투자된 것이었지만, 최근 환매 중단된 펀드는 CCC 등급 이하의 초고위험 채권에 투자된 펀드여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연구원은 또 “최근 정크본드 약세는 원자재 부문에 한정돼 있어 전체 신용시장으로 파급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LPL 파이낸셜의 앤서니 밸러리 채권 투자 전략가도 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때 정크본드가 타격을 입는 것은 통상적이라며 2008년 같은 위기에 비유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일부 정크본드의 디폴트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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