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작가가 최근 출간한 책에서 주장
20년간 중국 국무원 총리로 재직하며 현대 중국의 초석을 세운 저우언라이(?사진?·1898~1976)가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1970년대부터 미국과 중국은 관계개선에 들어갔다. 저우언라이(오른쪽)와 키신저가 회담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민음사 제공
초이윙무이의 책에 따르면 저우언라이는 1913~1917년 톈진의 난카이중학교 재학 시절 2년 후배인 리푸징과 사랑에 빠졌다. 1917년 저우언라이와 리푸징은 기숙사를 함께 쓰기도 했는데, 초이윙무이는 “둘은 그림자조차 떨어지지 않았다”며 두 사람의 관계가 긴밀했다고 말했다. 저우언라이는 당시 일기에 “리푸징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으며, 그와 함께 있으면 슬픔도 기쁨으로 변한다”라고 쓰며 리푸징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1921년 영국 런던에서 같이 생활하며 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저우언라이가 비싼 학비로 영국 유학을 포기하고 프랑스로 돌아가면서 둘은 이별하게 됐다. 반면 저우언라이는 1925년 결혼한 덩잉차오에게 애정이 없었으며 그들의 결혼은 이름 뿐이었다고 초이윙무이는 주장했다. 저우언라이와 덩잉차오는 저우언라이가 사망한 1976년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나갔지만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미국 출신으로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저우언라이 등 당 지도부와 가깝게 지낸 시드니 리텐버그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저우언라이가 동성애자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못 했다”면서도 “만약 저우언라이가 동성애자였고 이 사실이 알려졌다면 저우언라이의 인생은 파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