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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피곤해” 유튜버 농간에 伊 총리 본심 실토

“우크라 전쟁, 피곤해” 유튜버 농간에 伊 총리 본심 실토

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입력 2023-11-02 16:31
업데이트 2023-11-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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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러시아 유튜버에 속아
“유럽, 전쟁에 지쳤다” 속내 실토…총리실, 통화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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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차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23.10.5 로이터 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차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23.10.5 로이터 연합뉴스


멜로니 총리 “우크라 전쟁에 지쳤다…탈출구 필요성 이해”
“우크라 반격에도 근본적 변화 없어…기대 충족 못할 수도”
“출구 못찾으면 전쟁 더 길어져…해결 방안 제안 시점 저울질”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아프리카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유튜버의 장난 전화에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본심을 털어놨다.

러시아 유명 유튜버 ‘보반과 렉서스’는 1일(현지시간) 러시아 ‘루투브’와 캐나다 ‘럼블’ 등 동영상 플랫폼에 멜로니 총리와의 통화 녹음본을 게시했다.

약 13분 길이의 녹음본에는 이들이 우크라이나전 피로감, 흑해발 곡물 및 에너지 위기, 불법 이민자 문제, 대(對)아프리카 구상 등에 관해 멜로니 총리와 나눈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프리카 외교관을 사칭한 이들과의 통화에서 멜로니 총리는 유럽 지도자들이 20개월간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쳤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피곤해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했다.

멜로니 총리는 최근 자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동의 지지를 약화하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멜로니 총리는 이어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반격은 계속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변한 건 없다”며 “만약 우리가 출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러 간 갈등은 앞으로도 몇 년이 더 지속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양측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출구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어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그것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흑해발 곡물 위기 해법 반드시 필요”
“에너지 위기 극복 방안으로 아프리카 투자 구상”
“내년 G7 의장국…아프리카에 집중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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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부 즈후리우카에서 밀 수확이 한창이다. 2022.8.9 AP 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부 즈후리우카에서 밀 수확이 한창이다. 2022.8.9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흑해발 곡물 위기 해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멜로니 총리는 강조했다.

그는 “흑해발 곡물 위기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한다. G20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우리를 협박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멜로니 총리는 “폴란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면서도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아프리카 투자 구상도 밝혔다.

“모든 자금이 우크라이나로 쏠려 아프리카는 서방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칭 유튜버의 질문에, 멜로니 총리는 “맞다. 나는 자금을 아프리카로 끌어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점”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다른 유럽 국가와도 논의하고자 하는 전략적 계획 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에 대한 에너지 투자 구상이다. 11월 초 로마에서 열리는 이탈리아-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를 위한 기후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멜로니 총리는 이 같은 투자 구상이 즉각적인 효과는 없겠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가능하다면 수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내년 G7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초점을 아프리카에 집중하려 한다”고도 말했다.

다만 11월로 예정됐던 이탈리아-아프리카연합 간 정상회의는 이스라엘 전쟁 이슈에 따라 내년 초로 미뤄졌다.

이탈리아 총리실에 따르면 러시아 유튜버와 멜로니 총리 간 통화는 이보다 앞선 9월 뉴욕 유엔총회를 앞두고 이뤄졌다.

“쿠데타 벨트 ‘사헬’ 상황·곡물 위기 맞물려 불법 이민 심화”
“비단 이탈리아만의 문제 아냐…UN까지 나서야 하는 상황”
“유럽연합 다른 국가들 무신경…양해각서도 소용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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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해안경비대 함정이 지난 5일(현지시간) 지중해 람페두사섬 근처 바다에서 난민선에 탑승했다가 침몰하는 바람에 파도에 떠밀려다니던 이민자들을 태우려 하고 있다. 파도가 높아 해안경비대 함정이 수면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제공 AFP 연합뉴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함정이 지난 5일(현지시간) 지중해 람페두사섬 근처 바다에서 난민선에 탑승했다가 침몰하는 바람에 파도에 떠밀려다니던 이민자들을 태우려 하고 있다. 파도가 높아 해안경비대 함정이 수면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제공 AFP 연합뉴스
멜로니 총리는 사칭 유튜버에게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한 입장도 자세히 털어놨다.

멜로니 총리는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 12만명 넘는 이민자가 아프리카, 특히 튀니지에서 왔다. 인도주의적 상황은 물론 물류 및 안보 상황 등 모든 면에서 매우 복잡하다”고 밝혔다.

이어 “수단, 말리, 기니, 차드,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 쿠데타가 잇따르고 있는 사헬(사하라 사막과 중부 아프리카 초원 지대 사이 반건조지대) 상황과 곡물 문제 등으로 불법 이민 흐름은 지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머지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멜로니 총리는 지적했다.

그는 “아프리카 주민들이 이탈리아로 넘어오는 일에 대해 유럽은 이탈리아만의 문제로 국한하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러면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EU뿐 아니라 UN까지 나서야 하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멜로니 총리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그들도 이 문제를 이해는 하고 있다. 문제는 구체적인 답을 내놓는데 얼마나 걸리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EU가 튀니지와 체결한 양해각서마저 휴지조각이 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EU는 앞서 지난 7월 아프리카에서 보트를 타고 유럽 대륙으로 오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대가로 네덜란드, 이탈리아와 함께 튀니지에 재정 지원을 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유럽연합은 당시 협정의 연장선으로 튀니지에 1억 2700만 유로(약 1842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멜로니 총리는 “유럽연합은 튀니지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현재까지 1유로도 받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이탈리아 총리실 “속은 것 맞다” 인정
‘보반과 렉서스’ 속임수 통화 수차례
러시아 정보기관 배후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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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아프리카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유명 유튜버 ‘보반과 렉서스’에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속내를 실토했다. 이탈리아 총리실에 따르면 통화는 유엔총회를 앞둔 지난 9월 18일 이뤄졌으며, 통화 녹음본은 1일(현지시간) ‘보반과 렉서스’ 루투브, 럼블 등 동영상 채널에 게시됐다. 2023.11.1 보반과 렉서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아프리카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유명 유튜버 ‘보반과 렉서스’에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속내를 실토했다. 이탈리아 총리실에 따르면 통화는 유엔총회를 앞둔 지난 9월 18일 이뤄졌으며, 통화 녹음본은 1일(현지시간) ‘보반과 렉서스’ 루투브, 럼블 등 동영상 채널에 게시됐다. 2023.11.1 보반과 렉서스
이처럼 멜로니 총리는 본인이 아프리카연합의 고위 외교관과 통화하고 있다고 믿고 속내를 털어놨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유튜버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이같은 통화 내용이 공개되자 이탈리아 총리실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 유튜버가 공개한 통화 녹음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또 양측 간 통화는 9월 18일 이뤄졌다고 확인했다.

총리실은 “총리가 9월 19일부터 21일 사이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시기에 표적이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총리가 속은 것에 대해 유감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반과 렉서스라는 예명을 쓰는 러시아 유튜버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는 과거에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영국 가수 엘튼 존과 해리 왕자, ‘해리포터’의 저자 J.K. 롤링 등을 상대로 속임수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세계 지도자들과 어렵지 않게 전화 통화하는 것은 러시아 정보기관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추측한다.

그러나 이들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의 모스크바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우리가 전화번호를 찾도록 누군가가 도와주는 것은 합법적”이라며 “하지만 선택하는 것은 우리다. 애국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느냐”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장난 전화를 걸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은 뒤 “키릴 총대주교(러시아 정교회 수장)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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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아프리카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유명 유튜버 ‘보반과 렉서스’에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속내를 실토했다. 이탈리아 총리실에 따르면 통화는 유엔총회를 앞둔 지난 9월 18일 이뤄졌으며, 통화 녹음본은 1일(현지시간) ‘보반과 렉서스’ 루투브, 럼블 등 동영상 채널에 게시됐다. 보반과 렉서스라는 예명을 쓰는 러시아 유튜버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사진 오른쪽)는 과거에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영국 가수 엘튼 존과 해리 왕자, ‘해리포터’의 저자 J.K. 롤링 등을 상대로 속임수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2023.11.1 보반과 렉서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아프리카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유명 유튜버 ‘보반과 렉서스’에 속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속내를 실토했다. 이탈리아 총리실에 따르면 통화는 유엔총회를 앞둔 지난 9월 18일 이뤄졌으며, 통화 녹음본은 1일(현지시간) ‘보반과 렉서스’ 루투브, 럼블 등 동영상 채널에 게시됐다. 보반과 렉서스라는 예명을 쓰는 러시아 유튜버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사진 오른쪽)는 과거에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영국 가수 엘튼 존과 해리 왕자, ‘해리포터’의 저자 J.K. 롤링 등을 상대로 속임수 통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2023.11.1 보반과 렉서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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