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세주” 파키스탄서 신성모독 재판받다 숨진 이는 미국인

“내가 구세주” 파키스탄서 신성모독 재판받다 숨진 이는 미국인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7-31 11:37
업데이트 2020-07-3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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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 지방법원에서 신성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던 남성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19세 청년 파이살을 지지하는 이들이 30일 하이데라바드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아라비아어로 ‘선지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부모라도 기꺼이 희생시킬 것”이라고 적혀 있다. 하이데바라드 EPA 연합뉴스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 지방법원에서 신성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던 남성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19세 청년 파이살을 지지하는 이들이 30일 하이데라바드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아라비아어로 ‘선지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부모라도 기꺼이 희생시킬 것”이라고 적혀 있다.
하이데바라드 EPA 연합뉴스
자신을 구세주라고 주장하던 남성이 파키스탄 법정에서 신성모독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방청객이 쏜 총에 맞아 숨졌는데 알고 보니 미국인이었다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변을 당한 남성은 타히르 아흐마드 나심(57)으로 지난 29일 파키스탄 북서부 페샤와르 지방법원 피고인석에 경찰과 나란히 앉아 있다가 파이살(19)이라고만 당국이 신원을 확인한 방청객이 쏜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건 당시 영상에는 파이살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슬람의 적, 파키스탄의 적”이라고 외쳤으며, 그 뒤 나심이 총성과 함께 바닥으로 힘 없이 쓰러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잡혔다고 미국 폭스 뉴스는 전했다. NYT는 파이살이 모두 여섯 발의 총알을 쐈다고 전했다.

그는 꿈에 선지자 마호메트가 나타나 나심을 응징하라고 명했다고 경찰 조사 과정에 털어놓았다.

나심은 미국에 거주할 당시 인터넷을 통해 말리크라는 사람과 친분을 유지해오다 2018년 파키스탄의 한 쇼핑몰에서 만났는데 말리크가 당국에 고발하는 바람에 검거됐다. 말리크는 나심과 나눈 종교에 관한 대화 내용이 너무 놀라워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심은 파키스탄의 새로운 종교 분파로 이 나라 헌법에 이단으로 규정돼 있어 신도들이 반복적으로 박해를 당하는 아흐마디 교인으로 태어났으나 그 뒤 독립해 소셜미디어(SNS) 등에 올린 영상을 통해 자신을 구세주이자 예지자라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에서 신성모독죄는 법적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실제로 처형된 사례는 없다. 다만 신성모독을 저질렀다는 풍문만으로도 온갖 비난이 쏟아지고 경찰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성난 폭도들에게 신체적 위협을 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미국 국무부 남중앙아시아국은 30일 트위터를 통해 “파키스탄 법정 안에서 살해된 미국 시민 타히르 나심의 유족에게 애석함을 전한다”며 “이런 부끄러운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파키스탄 당국이 즉각 조치를 취하고 개혁을 추진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고 밝혔다고 NYT는 보도했다.

경찰은 파이살이 어떻게 경계가 삼엄한 법조 단지 안에 총기를 반입할 수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 단체 등은 신성모독 관련 법률이 종교적 소수집단을 박해하고 개인적 원한을 푸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며 철폐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강경 원리주의자들은 법률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조차 막아왔다. 그들도 법이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법을 개정하지 말고 대중이 개정하자는 이들을 막아서라고 선동하고 있다.

2011년 유망 정치인 살만 타세르가 펀잡주 지사였을 때 신성모독 법률을 개정하려 햇는데 경찰 출신인 자신의 경호원에게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타세르 지사는 신성모독으로 기소돼 사형을 언도받고 8년째 수감 중이던 기독교도 아시아 비비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결국 2018년 그녀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무죄가 확정돼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다.

그의 죽음은 지금도 보수적이고 엄격하기 짝이 없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정교 분리나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 직면하는 위험을 일깨우고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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