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고통 키운 ‘물가 쇼크’
더 싼 식재료 구하려 수마일 운전
“인플레가 쇼핑·식습관 뒤바꿔놔”
英 150만 가구 식품·전기료 허덕
호주 ‘투잡족’ 86만명 역대 최대
아르헨·이란 정치 불안으로 번져
밀 의존 아프리카 쌀·녹말로 대체
기름 좀 주시오… 스리랑카 고난의 행렬
15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주유소 앞에 자동차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으려는 주민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스리랑카는 연간 물가상승률이 30%에 육박하고 식품과 의약품 등 필수 품목의 수입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 사상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초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가운데 치솟는 물가는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과 그 가문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콜롬보 AFP 연합뉴스
콜롬보 AFP 연합뉴스
미 뉴욕타임스(NYT)는 “식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이 쇼핑 습관을 바꾸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버지니아주에 사는 리사 터커 역시 몇 마일을 운전해 식재료를 한꺼번에 구입하는 ‘마트 순례’로 식재료 비용을 아낀다. 터커는 집에서 구운 빵을 슈퍼마켓 정육 코너 직원에게 건네며 “베이컨에 할인 스티커가 붙으면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고기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한 ‘직원 매수’ 전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원자재 보호주의,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인해 식량과 에너지 등 전방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주요국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가 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생활비를 충당하려는 ‘투잡족’이 늘고 있다. 공영방송 ABC는 호주 통계국을 인용해 지난해 4분기에 두 개 이상의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이 약 86만 7000명에 달해 1994년 통계 조사가 시작된 뒤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물가 상승으로 실질 임금이 낮아지면서 생계를 위해 근로시간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흑해 연안에서 수입해 오는 밀에 의존해 온 아프리카 국가들은 밀 가격이 폭등하자 식생활까지 바꾸고 있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콩고민주공화국은 빵을 만들기 위해 뿌리 식물인 카사바에서 추출한 마니오카 녹말의 생산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케냐와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품회사들이 빵과 파스타에 사용할 밀가루를 쌀과 마니오카 녹말 등 자급할 수 있는 곡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수십퍼센트에 달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사회와 정치 불안을 낳고 있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지난 12일 수천명이 쏟아져 나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이란에서는 정부가 수입 밀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빵 등 밀가루 기반 식품의 가격이 최대 300% 급등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13일 여러 도시에서 벌어져 1명이 사망했다.
김소라 기자
2022-05-17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