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검찰, 34년 전 팔메 총리 암살범 지목했는데…

스웨덴 검찰, 34년 전 팔메 총리 암살범 지목했는데…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6-10 18:35
업데이트 2020-06-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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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현장 증인으로 행세한 엥스트롬, 20년 전 극단 선택

34년 전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가 괴한의 총탄에 스러진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베아바겐 거리의 피격 지점을 알리는 표지석에 10일 꽃이 놓여 있다. 스웨덴 검찰은 10일 팔메 총리가 스티에그 엥스트롬의 손에 암살당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종결을 선언했다. 스톡홀름 EPA 연합뉴스
34년 전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가 괴한의 총탄에 스러진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베아바겐 거리의 피격 지점을 알리는 표지석에 10일 꽃이 놓여 있다. 스웨덴 검찰은 10일 팔메 총리가 스티에그 엥스트롬의 손에 암살당했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종결을 선언했다.
스톡홀름 EPA 연합뉴스
스웨덴 검찰이 지난 1986년 스톡홀름의 길거리에서 올로프 팔메 당시 총리를 암살한 진범으로 2000년 극단을 선택한 스티그 엥스트롬을 지목했다.

크리스테르 페테르손 검찰총장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수십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었던 이 사건의 범인은 엥스트롬이 확실하다고 결론 내렸다면서 이로써 앞으로는 더 이상 진범 논란이나 음모론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팔메는 당시 총리로서 두 번째 임기를 막 시작하던 상황이었는데도 경호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를 뿌리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 해 2월 28일 금요일 밤, 갑자기 영화를 보러 가자며 부인 리스벳, 아들 마르텐과 그의 여자친구를 만나기로 하고 스톡홀름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스베아바겐 거리를 걸어가던 중 괴한이 등에다 총을 쏘는 바람에 즉사했다. 주변에는 수십명이 있었지만 목격자들은 키가 크고 다부졌다는 인상 착의만 기억할 뿐 누구도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스웨덴 검찰이 34년 전 올로프 팔메 총리의 암살 진범으로 지목한 스티그 엥스트롬이 같은 해 4월 7일 범행 현장인 스베아바겐 거리에서 자신의 목격담을 일간 엑스프레센 기자에게 털어놓고 있다. 검찰은 그가 거짓을 말했고, 범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2000년 극단을 선택했다고 봤다. EPA 자료사진 연합뉴스
스웨덴 검찰이 34년 전 올로프 팔메 총리의 암살 진범으로 지목한 스티그 엥스트롬이 같은 해 4월 7일 범행 현장인 스베아바겐 거리에서 자신의 목격담을 일간 엑스프레센 기자에게 털어놓고 있다. 검찰은 그가 거짓을 말했고, 범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2000년 극단을 선택했다고 봤다.
EPA 자료사진 연합뉴스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자 탁월한 웅변가로 이념이나 진영을 떠나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가 1986년 흉탄에 스러진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 AFP 자료사진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자 탁월한 웅변가로 이념이나 진영을 떠나 날선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가 1986년 흉탄에 스러진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
AFP 자료사진
경찰이 심문한 사람만 몇천 명에 이르렀지만 진범은 오리무중이었다. ‘스칸디아 남자’란 별명으로 통했던 엥스트롬은 사건이 일어난 날 저녁에 스칸디아 보험사 본사에서늦게까지 일하고 있었다. 사건 현장이 바로 근처였고, 그는 저격 순간을 목격한 20여명의 목격자 중 한 명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리고 2000년 극단을 선택하고 말았다.

용의자로 그를 처음 지목한 사람은 언론인 토마스 페테르손이었다. 검찰은 엥스트롬이 세상을 떠난 지 18년이 지나서야 그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는데 이날 그가 팔메 총리의 좌경 노선에 분개해 암살을 결행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가 사건 뒤 모든 순간들을 거짓으로 진술했고, 총기 훈련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그의 전 부인은 2018년 일간 엑스프레센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일년 전에 형사들로부터 심문을 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자신은 남편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며 “남편은 이만저만한 겁쟁이가 아니다. 그는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앞서 1998년에 잡범이며 현 검찰총장과 동명이인인 크리스테르 페테르손을 검거했는데 리스벳이 진범 같다고 해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나 항소해 무죄로 뒤집어졌다. 동기도 없고 총기도 회수되지 않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 역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을 이끈 카리스마 넘치는 팔메 전 총리는 여러 국제문제에 이념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날선 비판을 자주 해 적을 많이 만들었다. 노동조합을 편들어 기업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핵무력을 사용하고 비축하는 일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1968년 옛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미국의 베트남 북폭,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분리)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의 암살은 스웨덴 경찰을 수십년 동안 조롱 거리로 전락시켰다. 용 문신을 한 소녀를 쓴 스티에그 라르손 같은 작가는 몇년 동안 이 사건을 파헤쳤다. 팔메가 암살된 이유로는 숱한 음모론이 제기됐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했고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자금 지원을 한 것이 먼저 꼽혀 스웨덴 경찰이 이런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1996년 남아공을 찾을 정도였다. 둘째로는 스웨덴 무기업체 보포르스가 인도의 무기 구매 계약을 맺는 과정에 뇌물을 쓴 것을 팔메가 알았기 때문에 암살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셋째로는 쿠르드족 무장조직 PKK 그룹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는 바람에 타깃이 됐다는 주장이다.

리스벳은 결국 남편을 누가 암살했는지 알지 못한 채 2018년 남편 곁으로 떠났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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