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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유족에 소통담당관 두고 경찰은 정확한 정보 공개… 진실 알린다[글로벌 인사이트]

英, 유족에 소통담당관 두고 경찰은 정확한 정보 공개… 진실 알린다[글로벌 인사이트]

최영권 기자
최영권 기자
입력 2023-02-14 00:08
업데이트 2023-02-1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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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만에 내놓은 ‘힐즈버러 참사’ 보고서… 경찰, 재발 방지·실천 선언

최근 영국 경찰은 1989년 4월 15일 발생한 ‘힐즈버러 참사’ 유족에게 34년 만에 공식 사과하면서 53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힐즈버러 참사 가족 보고서에 대한 영국 경찰의 응답’이라는 제하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2017년 제임스 존스 전 리버풀 대주교가 작성한 ‘힐즈버러 가족 보고서’가 경찰에 내린 권고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영국경찰청장협의회(NPCC)와 영국경찰대학(College of Policing)이 지난달 30일 공동 발간한 보고서는 단순히 대형 참사 재발을 막겠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경찰이 해야 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담았다. 여기에는 지난해 10월 29일 경찰의 밀집 인파 관리 실패로 159명이 목숨을 잃고, 경찰이 사고 위험을 경고한 내부 정보보고서를 몰래 삭제하는 등 은폐·조작 혐의까지 드러난 ‘이태원 참사’를 겪은 우리나라가 참고할 내용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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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15일 영국 요크셔주 셰필드 힐즈버러스타디움에서 압사한 희생자 시신을 유족이 살펴보고 있다. 셰필드 AP 연합뉴스
1989년 4월 15일 영국 요크셔주 셰필드 힐즈버러스타디움에서 압사한 희생자 시신을 유족이 살펴보고 있다.
셰필드 AP 연합뉴스
“경찰은 공공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매일 일합니다. 그런데 우리(영국 경찰)는 1989년 힐즈버러 참사에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틴 휴이트 NPCC 회장)

이 보고서는 ‘경찰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유가족의 심정을 공감하고, 이들을 진실된 태도로 배려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참사 피해자의 ‘신원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신원권이란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를 대신해 유족이 법적으로 ‘진실을 알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 ‘배상을 요구할 권리’, ‘재발 방지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유엔총회에서 2005년 12월 결의한 ‘피해자 권리 기본 원칙’에는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권’이 명시돼 있다.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경찰이 대형 참사 유족에게 솔직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소통담당관’(FLO)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내용이다. 소통담당관은 경찰대학 등 전문기관에서 국가가 공인한 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소통담당관’은 유족과 신뢰와 공감을 형성하는 데 집중한다. 경찰·유족과 쌍방향으로 정보 교류를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들은 유족에게는 경찰 수사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 경찰에게는 유족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다.

또 담당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부의 유가족 지원 제도를 연계해 주고, 시신 검안 등 형사 사법 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고, 경찰 참고인 조사에 의무 동행해 심리적 부담을 덜어 준다. 영국 경찰은 앞서 2017년 5월 22일 23명의 목숨을 앗아 간 ‘맨체스터 아레나 폭탄 테러’와 2021년 ‘그렌펠타워 화재 사건’ 당시에도 소통담당관을 유가족에게 배치해 효과적인 소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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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이틀 뒤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 놓여있는 모습. 셰필드 AP 연합뉴스
참사 이틀 뒤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 놓여있는 모습.
셰필드 AP 연합뉴스
힐즈버러 참사 직후 유족은 가족 신원을 확인한 날 경찰에게 고인의 음주 여부에 대해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다. 그 의도는 축구장 압사 사건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기 위해서였다. 경찰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방어적인 소통 방식은 불신을 키우면서 수사를 방해하는 걸림돌도 됐다.

이와 관련, ‘경찰 수뇌부가 잘못했을 때 방어할 수 없는 실수를 방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경찰의 잘못을 방어하려는 태도, 조직 비난을 금기시하는 수직적인 문화를 배척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힐즈버러 유족은 사망자 신원 확인 과정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심했다. 경찰이 신원 확인을 완벽히 마친 다음 유족을 부르지 않고, 사망 당시의 상흔이 그대로 촬영된 사진을 직접 보고 찾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시신 검안을 담당한 검시관은 ‘검시관의 소유’라면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유족이 시신조차 만지지 못하게 했다.

지난 30년간 영국 경찰은 사망자 신원 확인 절차(DVI)에 관한 매뉴얼을 확립하고, 전문 교육 과정을 거친 사람만 검시관 일을 하도록 규정을 도입했다. 또 참사 희생자 시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검시관의 소유물’, ‘(경찰에게) 귀속된’과 같은 표현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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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유족이 조사에 적절하게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기로 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 대해 유족이 적절하게 이해하고, 질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을 보장해 유족의 목소리를 충분히 청취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찰의 법적 대응은 경찰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닌 진실된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또 30만건의 기밀 문건이 공개되며 진실 규명을 앞당긴 힐즈버러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 모든 정보, 문건, 서류 등은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공개하기로 했다. 경찰의 모든 기록을 보존할 의무도 만들었다.

‘진실성’과 ‘설명 의무’는 유가족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응하는 대원칙이 됐다. 경찰은 ‘술에 취한 훌리건들이 표도 없이 경기장에 난입해 사고가 났다’는 등의 허위 정보를 언론에 흘려 힐즈버러 생존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 보고서는 “힐즈버러 참사 직후 경찰의 잘못된 언론 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고통받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남은 경찰 오점은 참사 직후 정확하고 진실되게 언론에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고 솔직한 고백을 담았다.

영국 경찰은 신규 채용, 승진, 인사 평가에도 새 윤리규정 준수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최영권 기자
2023-02-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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