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원 감독 “칸 영화제 수상, 꿈도 못꿨죠”

신수원 감독 “칸 영화제 수상, 꿈도 못꿨죠”

입력 2012-08-22 00:00
업데이트 2012-08-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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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선’..지하철 막차 풍경서 슬픔 느껴”

“칸 영화제에 초청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칸에 가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을 준다고 해서 깜짝 놀랐죠.”

단편영화 ‘순환선(Circle Line)’으로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신수원 감독은 수상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프랑스 비평가협회가 주최하는 비평가주간 중단편 경쟁부문의 카날플뤼스(Canal+) 상을 받았다.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카날플뤼스 상을 받았지만, 단편영화여서 국내에서 제대로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순환선’은 22일 개막하는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다.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날 생각에 기쁘다는 신 감독을 최근 무교동 한 카페에서 먼저 만났다.

”사실 칸 영화제에 가기 전에 많이 바빴어요. 새 영화 ‘명왕성’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있던 시기였고 스태프는 제가 칸에 갔다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게다가 영화 준비 단계에서 과로를 했는지 비행기 안에서부터 감기 기운이 와서 칸에 가서는 아파서 거의 숙소에서 나가질 못했죠. 칸에 온 작품들이 이미 많이 걸러져서 온 것들인데, 그중에서 내가 설마 수상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한국에 빨리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출국 예정일 며칠 전에 영화제 관계자가 비행기 스케줄을 미뤄달라고 그러더군요. 그제야 ‘아, 뭘 주려나 보다’ 생각했죠. 하하.”

그는 쑥스러워하며 “나중에 얘기 들으니 카날플뤼스 수상작이 유럽 전역의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게 돼 있어 선정 과정이 원래 까다로운데, 이번에는 결정을 빨리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순환선’에 대한 현지 반응은 “강렬한 이미지를 느꼈다”는 평이 많았다고 한다.

영화는 늦둥이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둔 한 남자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그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 채 매일 집을 나와 지하철 순환선을 타고 맴도는 얘기를 그렸다.

두 번째 장편 영화 ‘명왕성’을 준비하고 있던 신 감독이 갑자기 단편을 만들게 된 건 보건복지부의 제안 때문이었다. 옴니버스 형태로 ‘가족시네마’를 만들 계획인데 출산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마침 예전에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는데, 출산 얘기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죠. 2005년에 단편으로 찍으려다가 제작비 구하기가 어려워 접어둔 거였는데, 지금 ‘순환선’의 절반 정도 내용이었어요. 출산을 앞둔 남자가 해고되고 지하철을 맴도는 얘기. 평소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데, 언젠가 애를 업고 구걸하는 한 여자를 봤어요. 그런데 승객 중 한 명이 옆 사람에게 ‘저 아줌마는 며칠 전에 다른 애 업고 있었는데…”라고 그러더라고요. 여자가 당황해서 피했는데, 그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 이 시나리오에서 다른 관계로 엮어봤어요. 어떻게 보면 희극적이죠. 개인한텐 힘든 상황이지만.”

영화 전체를 흐르는 정서는 비극적이다.

”마지막 장면을 맨 먼저 찍었어요.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장면이요. 배우가 없어도 되는 장면이라 먼저 찍었는데, 인천 방향으로 가는 완행과 급행열차가 교차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그 추운 날 8시간을 왔다갔다하며 겨우 잡아낸 장면이에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 이 영화의 톤을 어떻게 갈지 정했어요. 장면을 잡아내기가 어려워서 막차까지 찍었는데, 밤 11시에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배에 실려가는 것처럼, 은하철도 999에 탄 것처럼 귀가하는 모습이 슬퍼 보이더라고요. 또 이 얘기가 돌아갈 수 없는 한 가장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칸 영화제 수상 이후 해외 영화제에서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지만, 그는 현재 차기작 ‘명왕성’을 작업하느라 다른 일을 돌볼 여력이 없다고 했다.

’명왕성’은 장편 데뷔작 ‘레인보우’(2010) 이후 2년 만의 작품이다. 지난 6월 초부터 8월 초까지 두 달 동안 촬영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 대한 얘기를 그린 사회성 짙은 드라마라고 그는 소개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중학교 교사로 10여 년간 학교에 몸담았던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작품이다.

”성적이 상위 1%에 있는 아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그려봤어요. 오랫동안 구상한 시나리오라 너무 할 얘기가 많은 데다 드라마가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다른 작업을 하는 동안 문득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죠. 우리나라에서는 십대들 얘기가 다 공포영화 아니면 성장드라마가 되는데, 그런 걸 하고 싶진 않았어요. 사회성 짙은 드라마로 그렸습니다.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기성세대가 봐야 하는 영화죠.”

충무로의 떠오르는 배우들인 이다윗, 김꽃비, 성준과 ‘꽃중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조성하가 출연했다.

신 감독은 이 영화를 올 대입 수능시험 시기에 맞춰서 개봉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물었다.

”’명왕성’은 딱히 독립영화라고도, 상업영화라고도 할 수 없는 저예산 영화인데, 절반은 상업성을 띠고 있고 또 절반은 내가 쓴 시나리오로 자유롭게 만들기도 했죠. 아무래도 큰 자본이 들어오면 감독의 자유로운 영역이 줄기는 하겠지만 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을 땐 분명히 자본이 필요하겠죠.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건데 돈을 댄 사람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거고 그게 상업영화 방식이고요. 영화라는 게 결국은 그런 묘한 경계에 있는 것 같은데, 상업영화도 할 생각이 있고 나중에 독립적인 방식으로도 하고 싶어요. 사실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결국은 잘 만들어야 하고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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