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허문 ‘덕수궁 영성문’ 정면 사진 첫 발견

일제가 허문 ‘덕수궁 영성문’ 정면 사진 첫 발견

입력 2015-08-14 14:55
수정 2015-08-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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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코넬대 자료에서 확인…”문 복원시 매우 유용한 사료”

덕수궁의 북문으로, 선원전(璿源殿) 영역에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영성문(永成門)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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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북문, 영성문
덕수궁의 북문, 영성문 덕수궁의 북문으로 선원전 영역에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영성문(永成門)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이 발견됐다. 이 사진은 강성원 건축사사무소 강희재 대표가 미국 코넬대 소장 자료를 검색하던 중 찾아냈다. 1905년 1월 순종의 첫 번째 비인 순명효황후 국장 때 궁궐 밖에서 촬영한 것이다.
미국 코넬대 제공


강성원 건축사사무소 강희재 대표는 지난해 문화재청이 진행한 ‘덕수궁 선원전 복원정비 기본계획’ 보고서 작성을 위해 미국 코넬대 소장 자료를 검색하던 중 영성문을 정면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고 14일 밝혔다.

덕수궁 내에서 영성문 뒤쪽을 찍은 사진은 공개된 바 있지만, 현판이 걸린 문 앞쪽이 도드라지게 나온 사진은 없었다.

이 사진은 1905년 1월 순종의 첫 번째 비인 순명효황후 국장 때 궁궐 밖에서 촬영한 것으로, 영성문 오른쪽 행각 너머로 선원전과 흥복전(興福殿), 흥덕전(興德殿) 등 덕수궁 전각의 기와지붕이 솟아 있다. 또 영성문 지붕 왼쪽에는 멀리 영국공사관이 보인다.

덕수궁에는 동문인 대안문(大安門·오늘날의 대한문), 남문인 인화문(仁化門), 경희궁(慶熙宮)과 가까운 영성문 등 큰 문이 세 개 있었다. 영성문의 위치는 덕수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사거리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는 1920년 영성문과 선원전 일대를 헐어버렸다. 정동 지역을 남북 지역으로 관통하는 도로 공사도 그해 이뤄졌다.

강 대표는 이번에 소개된 사진에 대해 “영성문의 기둥 크기, 기둥 사이의 간격과 비례, 지붕 장식 등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한 뒤 “나중에 문의 주초석이 발굴되면 상부를 복원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진과 ‘덕수궁 평면도’(1910), ‘지적도’(2005) 등을 분석한 결과 영성문은 어칸(현판 아래 가운데 두 기둥 사이 공간) 폭이 4.6m, 어칸 좌우에 있는 협칸의 폭은 3.7m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근대건축 전문가로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을 쓴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아관파천 때 고종은 경복궁에서 영성문을 거쳐 러시아공사관에 들어갔을 것”이라면서 “영성문은 대한문에 버금가는 매우 아름다운 문이자 정동으로 향하는 ‘외교의 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선원전 영역을 ‘영성문 대궐’이라고 했을 만큼 영성문의 인지도가 높았으나 지금은 잊혀져 안타깝다”며 “이 사진을 계기로 영성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문이 잘 복원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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