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연구원 “명나라 홍무제가 준 어보 찍힌 유일한 고려 문서”
고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인 1389년 창왕이 과거 급제자인 최광지(崔匡之)에게 발급한 합격 문서인 ‘홍패’(紅牌)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이 문서는 전북 부안에 위치한 전주 최씨 문중의 재실인 유절암(留節庵)에 조선시대 고문서들과 함께 보관돼 있다 최근에 발견됐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려시대 홍패는 1205년 4월 발급된 장양수 홍패(국보 제181호)와 1305년 5월 발행된 장계 홍패(보물 제501호)를 비롯해 모두 6점뿐이다. 고려 말기 홍패로는 1355년의 양이시 홍패와 1376년의 양수생 홍패가 있다.
박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실 연구원은 13일 전북 전주대학교에서 열리는 한국고문서학회 학술대회에서 새롭게 공개된 ‘최광지 홍패’의 사료적 가치와 의의를 주제로 발표한다.
최광지 홍패는 가로 세로 각 64㎝인 정사각형으로 ‘성균생원 최광지 병과 제삼인 급제자’(成均生員崔匡之丙科第三人及第者)와 ‘홍무 이십이년 구월 일’(洪武貳拾貳年玖月日)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적혀 있으며,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 인장이 찍혀 있다.
박 연구원이 작성한 발제문에 따르면 최광지는 1377년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시대에도 집현전 제학을 지낸 최담(1346~1434)의 장남으로 생몰 연도는 알 수 없으며, 1389년 ‘병과 제3인’으로 과거에 합격했다.
당시 문과 등제는 을과, 병과, 동진사로 구분돼 있었으며, 최광지의 성적은 전체 6등에 해당됐다.
박 연구원은 “최광지 홍패는 고려시대 문서 가운데 ‘고려국왕지인’이라는 인장이 찍힌 유일한 사례”라면서 “고려국왕지인 어보는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선 후 초대 황제인 홍무제가 1370년 공민왕에게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나온 고려시대 홍패는 왕명을 받은 관사가 발급한 데 반해, 최광지 홍패는 왕명을 직접 시행한 문서로서 완결된 형태를 갖췄다”며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상단에 ‘왕지’(王旨)라는 문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광지 홍패가 여말선초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사회 체제를 급격히 바꾸지 않고 고려의 제도를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세종 이전에 발급된 조선 초기의 홍패에는 교지(敎旨) 대신 왕지라는 용어가 사용됐다”면서 “경국대전이 반포되기 전까지는 고려시대의 문서 양식을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광지 홍패는 오는 29일까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연구원 장서각 1층 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시권’(試券) 특별전에서 실물을 볼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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