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인들ㆍ누리꾼 “‘미투’ 운동 와중에 성추행 전력 안돼”
한국시인협회가 새 회장으로 성추행 전력이 있는 시인을 선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단 안팎에서 반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7일 시인협회에 따르면 협회는 지난달 23일 원로 9명으로 구성된 평의원 회의에서 감태준(71) 시인을 새 회장으로 뽑았다. 감 시인은 1972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해 1996년부터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10여년 간 교편을 잡았으나, 2007년 제자 성추행 사건 등이 고발돼 이듬해 해임됐다.
당시 불거진 성추문 중에는 성폭행 의혹 사건도 있어 피해자 고소로 형사 기소됐는데, 법원에서 피해자 진술이 번복됐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그는 해임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다른 제자에 대한 성추행 사건의 경우 여러 증거가 있어 사실로 봐야 하고 학교 명예를 훼손한 것이 맞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가 학교에만 고발하고 형사 고소를 하지는 않았다.
시인협회의 회장 선출에 참여한 한 원로 시인은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형사 사건이 무죄가 났다고 들었다. 그렇게 알고 있어서 감 시인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로 얘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최영미 시인이 시 ‘괴물’로 한 유명 시인의 과거 성추행을 고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고 방송 뉴스에 출연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 행태와 자신이 당한 피해를 폭로해 큰 파장이 일면서 시인협회 새 회장 선출에 관해서도 반대 여론이 한층 거세졌다.
SNS에서 ‘책은탁’ 계정으로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운동에 앞장선 탁수정 씨는 트위터에 “해시태그운동을 15개월동안 아주 빡세게 한 후인 2018년의 문단 상태가 바로 이것”이라며 “원로들이 제발 뭐라도 해줬으면 하며 해시태그 운동 했더랬는데 이젠 진짜 바라지도 않고, 찬물이라도 좀 안 끼얹으면 좋겠다”고 썼다.
한 젊은 시인은 트위터에 “‘원로’들이 뽑았다고 하니 ‘원로’들 제발 손잡고 퇴장 부탁한다”고 쓰기도 했다.
다른 한 젊은 문인도 “성폭력 가해자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인협회는 왜 기어코 수치의 똥물을 얼굴에 끼얹나”라고 성토했다.
일반 시민들의 시선도 따갑다.
‘jmjm****’ 아이디의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 댓글로 “검사 성추행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데,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이라며 “스스로 사퇴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인협회가 온 국민의 지탄감이 되는 것”이라고 썼다.
‘vega****’ 아이디의 누리꾼도 “미투 운동이 벌어지는 이 시점에 성추문이 있던 작가가 시인협회 얼굴이라는건 시대착오적”이라고 했다.
시인협회의 한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에 “해당 문제에 관해 외부의 문제 제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논의해 신중하게 대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시인협회는 1957년 설립된 국내 문인들의 대표 단체 중 하나로, 이름난 원로ㆍ중견 시인들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