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보다 멜라니 내일의 태양 뜰 거야

스칼렛보다 멜라니 내일의 태양 뜰 거야

입력 2015-01-04 17:58
수정 2015-01-0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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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멜라니役 김보경

마거릿 미첼의 장편소설이자 국내에는 영화로 잘 알려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지배하는 건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도도하고 강렬한 매력이다. 그러나 스칼렛의 뒤에서 조용히, 하지만 또렷한 빛을 뿜어내는 건 또 다른 여인 멜라니다. 스칼렛이 사랑했던 애슐리의 아내 멜라니는 삼각관계에 고통받는 인물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품는 버팀목이자, 스칼렛이 자신의 진심을 깨닫는 계기를 준 중요한 존재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계기로 앙상블에서 주역으로 올라선 김보경은 지난해 ‘위키드’를 통해 배우 인생의 2막을 열었다. 그는 “‘위키드’ 이후 공연이 끝나면 극장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팬들이 생겼다”며 웃었다.  쇼미디어그룹 제공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계기로 앙상블에서 주역으로 올라선 김보경은 지난해 ‘위키드’를 통해 배우 인생의 2막을 열었다. 그는 “‘위키드’ 이후 공연이 끝나면 극장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팬들이 생겼다”며 웃었다.

쇼미디어그룹 제공
오는 9일 베일을 벗는 동명의 뮤지컬에서 배우 김보경(33)이 멜라니 역에 낙점된 데는 그의 연기를 본 이들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터다. 여린 소녀처럼 보이지만 대극장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또렷이 새기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멜라니는 흔들림 없이 강한 여자예요.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걸 용서하는 대인배죠.”

작은 체구와 하이톤의 청아한 음색은 배우 김보경을 규정짓는 개성이다. ‘미스 사이공’의 킴과 ‘위키드’의 글린다 같은 굵직한 주역을 따내게 한 날개이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이미지를 가두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전 제가 표현할 수 있고 어울리는 역할을 하는 게 좋아요. 그럴 때 무대에 서는 게 행복하거든요.” 스칼렛 역할에 욕심이 없었냐는 질문에는 “섹시한 캐릭터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쿨하게 받아쳤다.

국내 뮤지컬계의 손꼽히는 여배우지만 배역의 크고 작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캣츠’의 말썽꾸러기 고양이, ‘레베카’에서 존재조차 희미한 ‘나’ 등의 조연을 맡으면서도 자신의 쓰임을 잘 해냈다. 이번 ‘바람’에서 그가 맡은 넘버는 솔로 1곡, 듀엣 2곡이다. “영화에서는 멜라니의 존재가 큰데 뮤지컬에서는 좀 축소됐어요. 한정된 장면 안에서 제 캐릭터를 관객에게 설득시켜야 하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작품에서 제일 좋은 넘버는 다 멜라니의 몫이에요. 호호.”

‘미스 사이공’을 300회 넘게 공연하면서 한때 ‘비련의 여주인공 전문 배우’라는 별명 아닌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런 그에 대한 인식을 바꾼 건 ‘위키드’의 글린다였다. 귀여운 푼수 마녀로 변신해 “블링블링”을 외치자 관객들은 ‘김보경의 재발견’이라며 환호했다. “‘미스 사이공’의 킴을 연기할 때는 킴의 슬픈 운명이 제 일상생활까지 지장을 줬어요.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매회 겪으면서 평소에도 축 처지고 말수도 줄었죠. 글린다로 10개월을 살면서 배역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또 고된 삶을 사는 여인 역할이다. “멜라니는 남편인 애슐리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오히려 남편을 보듬어주는 여자죠. 킴과는 또 달라서 저도 처음 맡아보는 캐릭터예요. 한번 밝은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이제 다양한 역할을 맡아보고 싶어요.”

앙상블로 무대 구석에서 구슬땀을 흘린 경험이 있는 그는 가장 마음을 울리는 장면으로 노예들의 군무 장면을 꼽았다. “저도 ‘아이다’에서 하녀 역할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결국 죽었어요. 그때처럼 노예 이야기여서 그런지 앙상블 배우들의 군무 장면을 볼 때마다 예전 생각이 나 울컥해져요.” 군무가 화려하다는 ‘바람’에서 그는 앙상블 배우들을 치켜세웠다. “앙상블 배우들과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힘을 많이 얻어요. 전 그들이 주는 힘을 믿습니다.” 오는 2월 1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만~14만원. 1577-336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2015-01-05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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