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돈 크레머가 25일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의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지난 25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1부 연주가 끝나고 앙코르 무대를 위해 나온 기돈 크레머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발언이 끝나고 그가 연주한 곡은 발렌틴 실베스트로프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두 개의 세레나데’. 실베스트로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격전이 발생했던 키이우 출생의 음악가다.
전 세계 공연장에서 수많은 연주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의미로 우크라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크레머도 연대에 동참했다. 자주 연주되는 곡은 아니지만 현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거장인 크레머의 바이올린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강한 울림이 있었다.
크레머는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25일 경기 부천아트센터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회를 열었다. 국내 정규 교향악단과의 첫 협연 무대였다.
1947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크레머는 1969년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와 1970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며 세계 정상급 연주자로 부상했다. 정통 클래식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보여주며 120장 이상의 음반을 발매했고, 발트 3국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앙상블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창단하며 폭넓은 음악적 행보를 펼쳤다. ‘한계 없는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지닌 그는 76세인 지금까지도 활발한 연주 활동으로 이 시대 가장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예술가로 꼽히고 있다.
기돈 크레머(좌측)와 지휘자 요엘 레비가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부천아트센터 제공
레비와 KBS교향악단은 첫 곡으로 바그너의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WWV 70’을 연주했다. 이어 슈만의 ‘첼로 협주곡 a단조, Op.129’을 크레머와 함께 선보였다. 크레머는 장인정신이 깃든 명품 연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앙코르로 우크라이나 음악가의 곡을 연주한 것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요소였다.
2부에서 KBS교향악단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들려줬다. 국내 최정상 교향악단이 흔하게 듣기 어려운 ‘불새’ 전곡 실황 연주가 끝나자 많은 관객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류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