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아비, 방연’ 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서
2015년 초연 이후 두 번째…역사 속 처절함 실감나게 그려
국립창극단이 지난달 3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창극 ‘아비, 방연’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국립극장 제공
햇볕이 들지 않는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주군을 모시고 급기야 사약까지 두 손으로 직접 건네게 된 충신. 그는 신하이기 전에 홀로 애지중지 키운 딸의 아버지였다.
국립창극단이 지난달 3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창극 ‘아비, 방연’은 조선 초기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 당시 영월로 귀양가는 단종을 호송하고 유배 중이던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것으로 기록된 왕방연을 그린다. 무거운 임무를 수행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생몰연도가 기록되지 않으며 역사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그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절절한 부성애를 지닌 한 아비로 풀어냈다.
땅에 발 닿을 틈도 없이 아끼고 아낀 딸 소사를 지키기 위해 왕방연은 충심을 다해 모셨던 주군 어린 단종의 유배길을 함께한다. 겨우 무사히 딸의 혼례를 치뤘지만 한명회의 계략에 신랑 송석동이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몰려 참형에 처해진다. 사육신의 삼족을 멸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혼례는 가졌지만 초야는 치루지 않았다”며 수의 입으려는 딸을 말리던 아비는 딸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충신들의 아이들을 도륙하라고 직접 입을 뗀다. 남의 자식들이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가 하면 충신들의 아내와 딸들이 노비로 공신들에게 끌려가자 소사의 처지를 한명회에 애원하다 급기야 단종을 찾아가 사약을 내민다.
국립창극단이 지난달 3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창극 ‘아비, 방연’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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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왕방연이라는 한 아비의 정은 너무 처절하다 못해 내내 아프다. 결국은 주군도 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마는 왕방연의 처지가 딱한 것은 물론이고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야속하고 잔인하다. 대사 한 줄, 가사 한 줄 곳곳에 마음을 울리는 단어들 투성이라 어느덧 무대 위 소리 만큼 객석의 훌쩍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지난 2015년 초연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무대엔 초연 주역인 김금미(도창), 최호성(방연), 민은경(단종) 등이 더욱 성숙하고 깊은 소리로 절절한 아픔을 뿜어냈다. 특히 소사를 연기한 박지현은 중학교 1학년이던 5년 전에 이어 고등학생이 된 지금 또 다시 호흡하며 아버지를 사랑하는 애절한 딸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다. “아버지, 나 다시 아이가 될까? 그럼 아버지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으니”라고 말하며 아버지 방연을 애틋하게 바라보던 소사의 눈빛과 목소리의 울림이 코끝을 찡하게 하며 감정을 툭 건드린다.
국립창극단이 지난달 30일부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창극 ‘아비, 방연’의 한 장면.
국립극장 제공
국립극장 제공
도저히 참을 수 없도록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바쁘게 훔쳐가면 어느새 100분이 지나있다. 무대와 음악, 조명 등 많은 효과들이 더해졌지만 무엇보다도 오롯이 집중하도록 엮어낸 목소리들이 꽤 오랫동안 여운을 준다. 공연은 8일까지 이어진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