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눈물은 인간 탓인가? 사람만이 닦아줄 수 있어요~

남극의 눈물은 인간 탓인가? 사람만이 닦아줄 수 있어요~

입력 2012-04-07 00:00
업데이트 2012-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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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권력】요아힘 라트카우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대뜸 나오는 반론은 이렇다. 그러면 성장하지 말자고? 747 같은 허황된 대선 공약은 젖혀 두고서라도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6%에 ‘그쳤다’는 한숨이 나오는 사회에서? 온 국민이 은행 돈으로 아파트 평수 늘리기를 꿈꾸는 나라에서? 적게 벌어 나누고 사는 삶, 꼭 필요한 것만 만들어 사는 세상, 자발적인 가난 같은 것들을 입에 올리긴 쉽다. 멋있어 보인다. 그리고 뛰어난 개인은 개별적으로 실천할 수도 있다. 그 결단, 박수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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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 도착한 한국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부근에 아델리펭귄이 정찰나왔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남극에 도착한 한국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부근에 아델리펭귄이 정찰나왔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그러나 사회 전체에 대한 적용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부도덕하다는 소리까지 들을는지 모른다. 참여정부 정책 브레인이었던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개마고원 펴냄)는 책에서 속시원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성장 혹은 마이너스성장 하자는) 그런 철학자 같은 얘기는 은퇴 뒤에나 하라.”고. 누구든 그런 고상한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 저성장의 아픔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간다.”고. 보수 언론이, 그것도 노무현 정권의 브레인에게 환호한 이유다. 물론 성장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성장이되 어떤 성장이냐가 관건이라는 점은 뭉갰지만.

구체적 한국 상황이 거북스럽다면 논의를 전 세계적 차원으로 높여 봐도 된다.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에 비유한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록은 메탄가스 종말론자다. 가이아를 질식시키는 메탄가스 문제를 파고들다 축산 동물에 주목했다. 인간이 육식을 하다 보니 소 같은 거대 가축을 기르게 되고, 그 가축이 메탄가스를 뿜어내는 동시에 그 동물 먹여 살리느라 식료품 가격이 뛰고 숲이 없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법은? 소 한 마리 죽이고 대신 나무 한 그루 심기.

그런데 이 방법은 척 봐도 좀 치사하다. 그 소를 먹기 위해 키운 건 사람이다. 깃털더러 몸통이라는 격이다. 이 문제에 부딪힌 생태학자들은 연구 끝에 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전 세계 인구 규모를 신석기시대 수준으로 축소하자는 것. 구체적 수치도 추정해 내놨다. 대략 4000만명, 그러니까 남한 인구 정도다. 팔은 안으로 굽으니 한국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한 명씩, 차마 직접적 표현을 못 하겠으니 처리(?)하면서 나무를 심자고 주장해야 할 차례인가.

생태환경론의 근본주의적 주장은 근본주의 아니랄까봐 사람들에게 안기는 불편함까지도 근본적이다. 물론 생태환경론이 전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환경상의 여러 문제점들로 인해 고통받고 분노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 한들 생태환경론자들의 주장을 따르자니 마뜩잖다. 어서 빨리 문명의 대전환에 착수해야 한다는 종말론적 죄의식을 강요당하다 보니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묘한 반발감까지 일어난다.

요아힘 라트카우의 ‘자연과 권력’(이영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이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저작이다. 저자는 독일 빌레펠트대 근대사 교수다.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사의 입장에서 원자력산업의 이면 들추기를 연구 테마로 삼아 왔다. 정부와 언론이 합세해 원자력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던 시절 반핵을 주장했으니 독일 정부로부터 탄압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근본주의적 환경생태론에 대한 여러 반론들을 받아들인다. 혹시 현대 사회의 문제점 때문에 고대와 중세보다 현대의 환경파괴를 더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태환경론에 늘 달라붙는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란 수식어 역시 결국은 인간중심주의 아닌지, 오직 인간만이 자연을 해치는 요인인지, 인위가 개입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만의 조화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그것은 혹시 처녀성 숭배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닌지 등등.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를 근대사회의 키워드로 잡았지만, 어쩌면 근대 이전이 더 위험 사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을 던진 셈이다. 저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환경을 키워드로 인류사 전체를 조망해 본다.

해서 환경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늘 환경과 싸우고 협력하고 타협하며 살아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퓰리처상을 받아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펴냄) 같은 과학문명사 저서를 떠올리게 한다.

지리학과 생리학을 토대로 삼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고고학적, 생물학적, 문화인류학적 증거자료들을 광범위하게 동원한다면, 역사학에서 출발한 저자는 여기에다 물질문명과 지중해 세계라는 키워드로 전체사를 제시한 페르낭 브로델, 수력사회론(책에서는 ‘수압사회’로 번역됐다)을 통해 동서양의 정치체제 비교를 진행했던 칼 비트포겔 같은 사회경제사의 대가들까지 얹어 놨다. 정치 문제를 끌어들인 셈인데 그 덕분에 차별되는 지점도 나온다.

가령 다이아몬드가 ‘의도하지 않은 자살’이란 개념으로 자연을 함부로 부린 문명은 결국 퇴장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면, 저자는 “생태학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되면 실제로는 설명력이 극히 미미한 이데올로기가 된다.”고 본다. 즉 자연 고갈로 닥쳐 오는 문명의 위기에 주목하는 것만큼 그에 대한 인간의 대응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에 대한 비판에도 적용된다. 저자는 가이아 이론에 대해 “크게 매료됐지만 역사가로서 그 생산적인 면이 어딨는지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차라리 지구를 다양한 작은 생태 시스템들의 집합으로 상상하고 싶다.”고 해 뒀다. 생태환경론이 주장하는 종말론에서 한 발 뺀 셈이다. 대신 “결국 환경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임”을 확인하면서 책을 끝낸다.

저자는 이제껏 제출된 증거 자료들을 모두 검토해 보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똑 부러지는 결론이나 대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거꾸로 그렇기에 인류 역사 전체를 되돌아보면서 각 분야의 연구성과들을 빠짐없이 인용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것은 큰 장점이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지구사’(Global History)의 본거지 미국세계사학회가 주는 도서상을 2008년에 받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두 개다. 밥과 똥.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인간은 밥과 똥의 순환체계 안에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다. 3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04-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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