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소설 ‘프라하의 묘지’
움베르토 에코
6년 만에 접하는 움베르토 에코(81)의 신작 소설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 펴냄·2권)는 첫 장부터 분위기가 심상찮다. 19세기 유럽에 팽배했던 인종, 종교, 여자에 대한 편견들이 뒤섞여 역겨움을 한껏 자아내더니 어느새 예리한 칼날이 유대인을 겨누고 있다.
작가는 183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서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증오와 음모가 어떻게 발생해 번져 나가는지를 추적한다.
에코의 표현처럼 시모니니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19세기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론의 ‘비조’(鼻祖)격에 해당한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시모니니는 무신앙과 냉소주의를 몸에 익혔고 사르데냐, 프랑스, 프로이센 등을 오가며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한다. 그가 내놓은 일생 최악의 위작은 바로 ‘시온 장로들의 프로토콜’이란 허위 문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조세프 발사모’의 천둥산 회의 장면은 유대인 랍비들의 프라하 묘지 회의 장면으로 바뀌고, 외젠 쉬의 ‘민중의 신비’에 나오는 예수회 신부의 글은 랍비의 연설문이 된다.
실존했던 이 문서는 1921년 허위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문서는 ‘유대인들의 세계 지배 음모’를 퍼뜨리는 데 기여하며 20세기 유대인 학살의 단초가 됐다. 하지만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에코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일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은 속임수에 바탕을 둔 전쟁이었고 CIA조차 이를 인정했다. 사담 후세인이 평생에 걸쳐 온갖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된 그 짓만은 하지 않았다. 하나의 거짓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에코는 2010년 이 소설을 고국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했다. 이탈리아에선 65만부, 스페인에선 초판만 200만부가 팔렸다. 에코는 출간 전 번역자들에게 19세기 문체를 과장되지 않게 재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1910년대 신문에 연재되던 번안 소설의 문체가 활용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3-01-1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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