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한 시작, 매혹의 시간…늙은 시인의 고백

내밀한 시작, 매혹의 시간…늙은 시인의 고백

이슬기 기자
입력 2020-03-11 17:22
업데이트 2020-03-1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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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51년… 원로 시인 문정희 산문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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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으로는 한국 최초로 시집을 냈던 문정희 시인이 등단 51년을 맞았다. 그의 시는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유독 선후배 문인들의 이름과 타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이유다. 민음사 제공
여고생으로는 한국 최초로 시집을 냈던 문정희 시인이 등단 51년을 맞았다. 그의 시는 결국 사람에게서 온다. 유독 선후배 문인들의 이름과 타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이유다.
민음사 제공
‘동굴은 에로스처럼 부드러웠지만 화살의 날갯짓으로 비로소 꽉 찼다. 시가 보석이건 레지스탕스 혁명이건 무엇이건 간에 시라는 위험한 물결 위에서 표류한 생애가 그 순간만큼은 후회스럽지 않았다.’(137쪽)

시작(詩作) 51년을 맞은 원로 문정희(73) 시인이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들이 산다’(민음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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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감각으로 풀어낸 그만의 여행기

책은 일찍이 미국 뉴욕 유학 생활을 경험했으며, 스웨덴 ‘시카다상’을 비롯한 국제문학상의 수상자이자 14종의 번역서를 지닌 시인의 여행기이자 내밀한 시작 노트다. 시인은 프랑스 낭트부터 중국 홍콩과 난징, 일본 도쿄에서부터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이스라엘 텔아비브, 칠레 산티아고와 자메이카 킹스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문학 행사와 시상식에 초청돼 얻은 국제적 감각을 글에 풀어냈다.

그는 프랑스 파리의 지하 동굴 바에서 프랑스와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레바논의 시인을 앞에 두고 모국어로 시로 읊은 경험을 풀어내며 ‘가난하고 부자인 시인 모두가 나의 에로스’(137쪽)라고 말한다. 베네치아에서 목격한 명품 패션의 허무, 인도 뉴델리에서 느낀 얕은 센티멘털의 위험성 등 타국에서 만난 시인의 시적 사유를 오롯이 담았다.

●19편 시가 탄생한 배경도 오롯이

책에는 19편의 시가 탄생한 배경이 함께 실렸다. 가령 ‘고철’이라는 시는 김수영 시인의 묘소에서부터 시작됐다. 동료 문인들과 함께 찾았던 묘소에서 시비에 박힌 시인의 얼굴이 휑하니 뚫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누군가 동판을 파내 고철값에 팔아먹었다. ‘뚫린 구멍 속으로/ 자유를 위하여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안다는/ 그런 바람이 날고 있었지’(‘고철’, 142쪽)

펄펄 끓는 작가 혼으로 나이마저 가늠할 수 없던 박경리, 남편 김환기 화백을 떠나보낼 때 “사람의 몸속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는 줄 몰랐다”는 김향안 등 그에게 영감을 준 문화계 인사와의 교류담도 매혹적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03-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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