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근질근질… 내 몸 병들게 한 패션의 배신

울긋불긋 근질근질… 내 몸 병들게 한 패션의 배신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4-02-22 18:42
업데이트 2024-02-23 03:3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올든 위커 지음/김은령 옮김/부키/404쪽/2만원

새 옷에 포함된 독성물질 ‘경고’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 낱낱이 밝혀
새 유니폼 입고 응급실 간 승무원
유아복 입고 발진 일으킨 아이들
구체적 사례로 연구 결과 뒷받침

지속 가능한 패션 실천 방법은
패스트패션 지양, 윤리 기업 찾고
인증 라벨·천연 소재 사용 등 확인
새 옷 샀을 땐 세탁하고 착용해야


이미지 확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패션 의류 산업은 1조 5000억 달러(약 2003조 2500억원) 규모로 세계에서 큰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 급격하게 커진 패스트패션 덕에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최신 유행을 따라갈 수 있게 됐다. 픽사베이 제공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세계 패션 의류 산업은 1조 5000억 달러(약 2003조 2500억원) 규모로 세계에서 큰 산업 중 하나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 급격하게 커진 패스트패션 덕에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최신 유행을 따라갈 수 있게 됐다.
픽사베이 제공
인터넷에서 “새 옷을 사서 바로 입느냐, 한 번 빨아 입느냐”에 대해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새 옷을 빨면 헌 옷이지 새 옷이냐는 주장과 새 옷에는 각종 화학물질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빨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어린 시절 새 옷에서 나는 냄새는 친구들에게 옷을 새로 샀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징표였다. 이상하게도 석유 비슷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새 옷을 입고 하루 종일 놀다 들어오면 항상 피부가 울긋불긋하고 가려웠다. 새 옷에 여러 화학 처리가 이뤄져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이미지 확대
저자는 ‘지속 가능한 패션’ 전문가이자 탐사 저널리스트로 안전한 옷을 선택하는 방법과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에코 컬트’ 운영자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새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처리되는 화학물질들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사실 환경 관련 책들은 근거 없이 막연한 두려움을 조장한다는 의혹의 눈길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최신 연구 결과와 구체적 사례들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기 시작한 뒤부터 옷은 24시간 우리 몸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을 읽다 보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된다.

2016~2017년 아메리칸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 등 항공사 승무원들은 새 유니폼을 받아 입은 뒤부터 발진과 천식, 급성 피로, 탈모, 편두통, 안과 질환을 겪었다. 어떤 승무원은 새 유니폼을 착용하고 일한 지 며칠 만에 호흡곤란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갔고, 또 다른 승무원은 너무 아파서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했다.

승무원들이 입는 유니폼은 방수와 오염 방지, 구김 방지, 곰팡이 방지, 냄새 방지 기능을 갖췄으며 밝고 채도가 높은 색상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각종 화학물질과 공정이 유니폼 한 벌에 모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아복을 입은 아이들이 심한 발진을 일으키고, 고급 여성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만든 브래지어를 착용한 여성들에게 발진으로 인해 영구적인 흉터가 생기는 일도 있었다.
이미지 확대
옷 한 벌에는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깔을 내는 염료를 포함해 최대 5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화학물질이 몸속에 들어와 내분비 교란, 이유 없는 통증, 알레르기, 불임, 심지어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언스플래시 제공
옷 한 벌에는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깔을 내는 염료를 포함해 최대 5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화학물질이 몸속에 들어와 내분비 교란, 이유 없는 통증, 알레르기, 불임, 심지어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언스플래시 제공
저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최소 4만 가지 화학물질이 상업적으로 사용되지만 인간과 동물에게 안전하다고 확인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심지어 옷 한 벌에 50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새 옷을 입고 난 뒤 가렵거나 피로감이 느껴진다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옷 때문이라는 말이다.

옷에 있는 화학물질 때문에 소비자가 피해를 봐도 제조사가 이를 인정해 리콜하거나 손해배상을 한 적은 없다. 제조사들이 이렇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옷에 사용된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밝혀진 게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관련 규제가 거의 없고, 화학물질 사용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유럽연합(EU)에서도 규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패션 업계에서 사용하는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고 자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울트라 패스트패션 브랜드 피하기 ▲신뢰할 수 있는 회사 찾기 ▲제삼자 인증 라벨 확인 ▲기능성 소재 옷 피하고, 천연 소재 옷 찾기 ▲옷을 산 뒤 세탁하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속 목소리를 냄으로써 패션 업계의 관행을 바꾸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바위를 뚫는 것처럼 말이다.
유용하 기자
2024-02-23 16면
많이 본 뉴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당신의 생각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가 5월 21일 시작된 가운데 경영계와 노동계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최대 화두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입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요구한 반면, 노동계는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