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화제와 논란을 빚은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는 젊음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프랑스 문학작품들이 등장해 전 세계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기 드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의 개회식 영상 장면. KBS 유튜브 캡처
전위적인 퍼포먼스부터 대한민국 선수단을 북한으로 잘못 소개한 대형 사고까지.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섰던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서 전 세계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끈 장면이 있었다. 오페라 가수 마리나 비오티와 파리관현악단의 ‘카르멘’이 흘러나오는 도서관. 청춘 남녀 셋이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은밀한 욕망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문학책이 화제였다. 작품의 표지만으로도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문학강국’ 프랑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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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의 소설 ‘벨아미’ 국내 번역본 표지.
개회식 영상에서 표지가 등장한 프랑스 문학은 총 다섯 권이다. 폴 베를렌(1844~1896)의 시집 ‘말 없는 연가’, 알프레드 드 뮈세(1810~1857)의 희곡 ‘장난삼아 연애하지 마소’,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소설 ‘벨아미’, 아니 에르노(84)의 소설 ‘단순한 열정’, 레일라 슬리마니(43)의 에세이 ‘섹스와 거짓말’이 영상에 순서대로 소개됐다. 여러 출판사에서 선집으로 엮은 베를렌의 작품을 포함해 모두 우리말로 번역돼 있다.
국내에서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소개된 모파상의 ‘벨아미’는 아름다운 미모로 파리 사교계에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성 ‘조르주 뒤루아’의 파괴적인 욕망을 다룬 작품이다. 치명적인 ‘옴파탈’,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나쁜 남자’의 원형이라 하겠다. 영상에서는 서로에게 매혹된 두 남성 사이의 ‘사랑의 신호’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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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화제와 논란을 빚은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는 젊음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프랑스 문학작품들이 등장해 전 세계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폴 베를렌의 시집 ‘말 없는 연가’의 개회식 영상 장면. K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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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베를렌의 시집 ‘말 없는 연가’ 국내 번역본 표지.
이들과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의 손에 들려 있던 ‘단순한 열정’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에르노의 대표작이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품에 안았던 에르노는 자기가 직접 체험한 걸 소설화하는 작가로도 유명한데, 한국어판은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작가가 젊은 유부남 연인과 가졌던 짧고도 정열적인 사랑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에르노의 다른 작품처럼 수위가 상당히 세다. 영상 속 여성은 이 책의 표지를 남성에게 보여 주며 ‘뜨거운 사랑’을 나누자는 유혹을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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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화제와 논란을 빚은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는 젊음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프랑스 문학작품들이 등장해 전 세계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에세이 ‘섹스와 거짓말’의 개회식 영상 장면. K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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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슬리마니의 에세이 ‘섹스와 거짓말’ 국내 번역본 표지.
2016년 35세의 나이에 프랑스어권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받은 슬리마니는 모로코 출신 여성 작가다. 경계인,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르테의 번역으로 소개된 ‘섹스와 거짓말’은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내밀한 성적 욕망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인터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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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화제와 논란을 빚은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는 젊음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프랑스 문학작품들이 등장해 전 세계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알프레드 드 뮈세의 희곡 ‘장난삼아 연애하지 마소’ 의 개회식 영상 장면. K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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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드 뮈세의 희곡 ‘장난삼아 연애하지 마소’ 국내 번역본 표지.
금지된 사랑과 그로 인한 인간의 파멸을 그린 뮈세의 희곡 ‘장난삼아 연애하지 마소’는 지만지에서 우리말로 번역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으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아르튀르 랭보의 동성 연인이자, 그를 총으로 쏴 다치게 했던 일화로도 유명한 베를렌이 감옥에서 쓴 시집 ‘말 없는 연가’는 지만지·선영사 등에서 낸 선집에 일부 작품이 수록된 형태로 소개됐다.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등의 시가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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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화제와 논란을 빚은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는 젊음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프랑스 문학작품들이 등장해 전 세계 문학·출판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의 개회식 영상 장면. K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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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 국내 번역본 표지.
프랑스 문학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장폴 사르트르(1905~1980)나 알베르 카뮈(1913~1960) 등 실존주의 작가가 아니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겁고 진중한 철학을 담은 책이 아니라 하나같이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노벨문학상 작가 에르노를 앞세운 것에서 영국·독일과 함께 유럽 문학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모로코 작가 슬리마니의 작품을 내세운 것에서는 프랑스가 다양성과 이방인에 대한 포용을 중시하는 나라임을 과시하려는 시도도 읽힌다.
오경진 기자
2024-08-0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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