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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레슬러 출신 배우 ‘더 록’의 부친 로키 존슨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레슬러 출신 배우 ‘더 록’의 부친 로키 존슨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1-17 03:20
업데이트 2020-01-1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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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
15일 타계한 로키 존슨(오른쪽)과 아들 드웨인 ‘더 록’ 존슨(가운데), 그리고 드웨인의 전 아내 아타. 게티 이미지스
15일 타계한 로키 존슨(오른쪽)과 아들 드웨인 ‘더 록’ 존슨(가운데), 그리고 드웨인의 전 아내 아타.
게티 이미지스
레슬러 출신의 할리우드 액션 배우 드웨인 ‘더 록’ 존슨의 부친이며 전직 프로 레슬러 로키 존슨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세계 레슬링 엔터테인먼트(WWE)는 15일(이하 현지시간) 본명이 웨이드 더글러스 볼스인 고인이 스러진 사실을 확인했다고 영국 BBC가 16일 전했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대 WWE의 인기를 끌어올리며 ‘솔 맨(Soul Man)’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는 최초의 흑인 태그 팀으로 WWE 우승을 차지했던 레슬러로도 기록된다. 1991년 은퇴한 뒤 아들 드웨인을 훈련시켜 WWE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육성했다.

드웨인은 부친이 WWE 명예의전당에 헌액됐을 때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영원히 추앙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4년 8월 24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앰허스트에서 자란 고인은 10대 때 토론토로 옮겨와 곧바로 레슬링을 시작했다. 10대 시절 복서로 훈련 받으며 무함마드 알리, 조지 포먼 등과 스파링을 한 인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레슬링을 직업으로 택해 1960년대 중반 전국 레슬링 연맹(NWA)에 가입했다. 이 때 얻은 링네임이 ‘로키 존슨’이었다. NWA에 18년을 몸 담으며 태그 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WWE에 합류하면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WWE는 성명을 통해 “토니 아틀라스와 ‘솔 패트롤’ 팀을 결성하며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두 남자는 1983년 12월 10일 ‘와일드 사모안스’를 물리치며 WWE 역사에 처음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태그 팀 우승을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마치 중력을 부정하는 듯 높이 날아 날리는 드롭킥이 팬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2017년 한니발 TV 인터뷰를 통해 고인은 선수로 뛰며 늘 인종차별 공격을 받았지만 링에서의 자리를 “결코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 고집대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남부 사람들은 그 옛날 노예들에게 했던 대로 TV에서 내가 채찍질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난 ‘아니, 난 선수로서 왔고 선수로 떠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은 날 존중해줬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수많은 현역, 옛 레슬러들이 추모의 뜻을 잇따라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트리플 H, 맷 하디, 윌리엄 리걸, 디본 두들리 등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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