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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시스템의 역설/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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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9-17 01:35 금요칼럼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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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40년 가까이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를 보는 안목이 조금씩 깊이를 더하는 느낌이다. 한 예로 “시스템(제도, 규정)은 그 시효 순간부터 변질하기 시작한다”라는, 그 나름대로 터득한 통찰을 들 수 있다. 한 국가사회의 속성이나 성격을 파악하는 지름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제도이다. 법률뿐 아니라 관행화한 다양한 제도를 통해 그 사회를 속성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 자체에만 몰두하면 아주 엉뚱한 해석을 도출할 수도 있다. 제도가 비록 한 사회를 파악하기 좋은 프리즘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작 제도 그대로 사회가 돌아가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빨간 신호에서 길을 건너면 무단횡단으로 범칙금을 부과한다는 규정을 보고는, 그래서 빨간불에는 사람들이 길을 건너지 않았다는 해석을 도출하면 엉터리라는 얘기다. 여기에 바로 시스템의 역설이 존재한다.

예전 군사독재 시절에 노동부라는 부처가 있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이해보다는 사용자(재벌)를 위한 부서처럼 처신하기 일쑤였다. 노동부가 되레 노동 환경의 개선을 방해하고 노동자를 억압하곤 했다. 민의를 대변하는 특별 권력 기구로 국회라는 제도를 두어 의원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부여하였는데, 과연 국회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오히려 민의를 왜곡하는 일은 없는가? 사법부는 법의 정의 구현을 위해 만든 기구로, 판사에게는 어마어마한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판사가 공정하지 않으면 되레 정의 구현을 방해하는 괴물로 언제라도 전락할 수 있다. 전관예우라는 말 자체가 이미 재판을 왜곡하는 범법행위인데도,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는 판사들이 여전히 많아 한심하다. 범법자를 공정하게 기소하라고 검찰을 두었는데, 사익을 따라 수사와 기소를 결정하는 검사가 많을수록 되레 범죄자 소굴로 언제라도 돌변할 수 있다. 지금 생생히 보는 중이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언로(言路)를 중시하여 대간(臺諫) 또는 언관(言官) 제도를 두었다. 그런데 후기에 이르면 여러 실학자가 대간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타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약용은 언로를 보장하려던 대간 제도가 지금은 오히려 언로를 막는 장애물이라며 차라리 폐지하는 편이 낫겠다고 역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대간 제도를 따로 두지 않았다. 임금의 신하라면 어떤 문제를 인지했을 때 누구라도 자유롭게 간쟁(諫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내려오면서 국가의 규모가 커지자 간쟁을 전담할 특별 부서를 두고 거기에 언관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언관들이 공론(公論)에 힘쓰지 않고 당론(黨論)만 일삼는 바람에 제도 자체가 심각하게 타락하였다. 언관이 아닌 다른 신하들은 간쟁거리가 있어도 자신의 임무가 아니므로 입을 다물고, 언관은 당론을 공론이라 우기니 대간 제도의 취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차라리 제도를 폐지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간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정약용의 논지였다. 언관 제도가 되레 언로를 막는 쪽으로 기능한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일부 주요 언론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정론(正論)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론을 저버리지는 않아야 언론다운 언론으로서 존재 가치가 있을 테다. 언론도 사람이 담당하므로 언론사마다 정견이 다를 수 있고 주안점을 달리할 수 있다. 그래도 합리적 상식에서 벗어나서는 언론이랄 수 없다. 당론으로 먹고사는 언론사에서 무슨 희망을 볼 수 있을까? 검찰 출입 기자들 가운데 정말로 검찰을 주체적으로 취재한 적 있는 기자는 과연 몇 %일까? 언론(대간)이 사적 권력 집단과 결탁했던 조선 후기의 모습이 2020년대 지금 마치 파노라마처럼 자동 재생되는 현실이 암담하다. 언론의 이름으로 언론을 망가트리는 저들을 어찌할꼬?

2021-09-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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