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96) 할머니의 발인이 7일 오전 8시께 경기도 남양주시 한양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발인식은 정·관계 인사의 참석 없이 고인의 가족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 등 10여명만 참석해 조용히 진행됐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은 최 할머니의 관은 붉은색과 노란색 꽃을 수놓은 천으로 덮였다. 발인식을 마친 유족들은 흐느끼며 관 위에 국화를 얹은 뒤 장지로 향했다.
191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최 할머니는 15세 때 만주 무단강((牡丹江, 목단강)까지 끌려가 일본 군인만 근무하는 부대에서 위안부로 생활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3∼4년간 행상과 걸인으로 생활하면서 계속 남쪽으로 걸어와 고향 구례에 도착했고, 이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노환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있던 최 할머니는 지난 5일 0시56분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6명으로 줄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 할머니 발인
7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한양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최갑순(96) 할머니의 발인식에서 운구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191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최 할머니는 15세 때 만주 무단강((牡丹江, 목단강)까지 끌려가 일본 군인만 근무하는 부대에서 위안부로 생활했다. 노환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던 최 할머니는 지난 5일 별세했으며, 이로써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46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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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최 할머니는 15세 때 만주 무단강((牡丹江, 목단강)까지 끌려가 일본 군인만 근무하는 부대에서 위안부로 생활했다. 노환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있었던 최 할머니는 지난 5일 별세했으며, 이로써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46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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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최 할머니는 15세 때 만주 무단강((牡丹江, 목단강)까지 끌려가 일본 군인만 근무하는 부대에서 위안부로 생활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3∼4년간 행상과 걸인으로 생활하면서 계속 남쪽으로 걸어와 고향 구례에 도착했고, 이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노환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있던 최 할머니는 지난 5일 0시56분 별세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6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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