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에 담긴 여인만의 글…“아니 내 얘기 좀 들어봐” [클로저]

내방가사에 담긴 여인만의 글…“아니 내 얘기 좀 들어봐” [클로저]

강민혜 기자
입력 2022-04-12 11:24
업데이트 2022-04-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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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가사에 숨은 수백년 전 여인들의 이야기
“이내말삼 들어보소”
“내 얘기 좀 들어봐”
수백년을 관통한 공통된 요청

내방가사에 눌러담은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
방 안·구중궁궐에 갇혀…한글, 스트레스 해소 도움
창의적인 글 적고 필사하며 소일거리
의빈 성씨·숙명공주…왕실 여인도 글놀이
혜경궁 홍씨, 한글 기록의 정수
수백년 흘러 오늘까지 전해진 그들의 이야기
의빈 성씨 이야기가 나왔던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방송 화면. MBC 유튜브
의빈 성씨 이야기가 나왔던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방송 화면. MBC 유튜브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MBC 유튜브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MBC 유튜브
“아니... 아니 내 얘기 좀 들어봐”
“누나, 계속 누나 얘기만 들었어”
“내 얘기 좀 들어봐. 내 얘기를 안 듣는 것 같아”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는 최근 토크 위주의 신선한 기획을 내고 있는데요. MC 유재석과 그의 관계성에 기반에 입담을 주력으로 내세운 ‘조동아리’·‘누나랑 나’ 기획이에요. 특히 누나랑 나의 경우 유튜브 조회수 270만을 돌파하며 관심을 모았습니다.

유명 MC인 개그우먼 박미선, 이경실, 조혜련이 ‘누나미’를 뽐내며 입담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중 조혜련씨는 계속 해서 “내 얘기 좀 들어봐”라는 대사로 큰 웃음을 주었는데요. 꾹 눌러도 사연 많은 여인들의 속얘기는 그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내방가사는 18~20세기 창작된 작품으로 여성들의 속 이야기가 담겼다. 강민혜 기자
내방가사는 18~20세기 창작된 작품으로 여성들의 속 이야기가 담겼다. 강민혜 기자
● 한글, 속풀이에 으뜸
한글은 이들의 속풀이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4음보에 담은 가사 형태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하기도 했고요. 자유로운 형식으로 붓을 써내려가기도 했어요. 당시 여성들의 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이들은 주로 내방에 있어야 했기에 이들을 내방가사라고 부르는데요.

그 내용으로는 주로 시집 보낸 자식에 대한 사랑,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자긍심 등이 담겼습니다. 자신의 역할보다 자식이나 남편에 의해 정의되곤 했던 당대의 시대상이 잘 반영돼 있죠.

또다른 이유로는 여성들이 주로 내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았기에 가족과의 이별이 단골 소재가 된 것인데요. 사회생활의 전부가 가족과 마찬가지였으니 그 구성원을 잃으면 큰 단절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런가 하면 시대를 앞서가 깨어있던 부모님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어 스스로 열심히 익히거나 돈벌이에 눈을 떠 성공기를 남긴 여성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여자공부 배워내니 재주도 비범하다”거나 “분한마음 독하게 먹고 살림살이 힘쓰리라”라고 다짐하는 등 자신만의 기록을 남겼어요.
“이내말삼 들어보소” 글귀가 적힌 복선화음록. 원본 외에도 다양한 필사본이 존재한다. 강민혜 기자
“이내말삼 들어보소” 글귀가 적힌 복선화음록. 원본 외에도 다양한 필사본이 존재한다. 강민혜 기자
● 궁에서도 기록 유행
궁 안의 여인들은 어땠을까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는 필사를 즐기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생각시로서 동궁에서 일하며 친구들과 필사하는 것으로 용돈벌이도 하고 자신의 꿈도 충족하는 캐릭터인데요. 그의 이름은 성덕임으로 정조의 짝 의빈 성씨로 잘 알려져 있죠.

그의 이름이 어떻게 후대에 전해졌을까요. 그건 그가 필사한 책자에 자신의 이름 석 자 성덕임을 적어넣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름 석 자가 남은 유‘이’한 조선 왕실 여인이 됐죠.

의빈 성씨는 화빈 윤씨, 영희, 경희, 복연 등과 장편소설 ‘곽장양문록’을 공동으로 필사했어요. 본문 위아래 여백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남겼죠.

한글이 창제된 후 처음 남은 왕실 여인의 편지는 무엇일까요. 숙명공주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등이 담긴 숙명신한첩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여기 담긴 67건의 편지 중 숙명공주가 쓴 건 한 건에 불과한데요. 여기에는 장렬왕후·인선왕후·명성왕후 등 왕실 여성이 쓴 편지 56건이 있습니다.

앞서 내방의 여인들이 그랬듯 인선왕후 역시 남편을 일찍 잃어 그 외로움을 출가한 딸에게 한글 편지를 써서 해소하곤 했어요.
내방가사에는 가족간의 정, 떠나는 자식에 대한 아쉬움 등 여성들의 감정을 담았다. 강민혜 기자
내방가사에는 가족간의 정, 떠나는 자식에 대한 아쉬움 등 여성들의 감정을 담았다. 강민혜 기자
● 가부장제 책 거부
취향 따라 필사 문화

앞서 언급한 의빈 성씨가 생각시던 시절은 영조의 재위 기간입니다. 영조는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왕이에요.

다만 그 내용이 가부장적이었는데요. 일상생활에서 여성이 지켜야 할 규범을 담은 여사서 등을 배포했어요. 갑갑한 방 안에서 가부장제 책이라니, 얼마나 읽기 싫었을까요. 실제 인기가 없었습니다.

대신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녹여 오늘날까지 기록을 남겼어요. 또한 소설책을 서로 주고 받으며 언문을 즐겼습니다.

당시 많은 중국소설이 궁중에 유통되곤 했어요. 자신의 손으로 필사해서 말이에요.

또한 이미 여러 사람에게 익숙할 혜경궁홍씨의 한중록 역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며 기록한 절절한 흔적이죠.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쓰거나 소설을 필사하며 문화를 즐겼던 과거의 기록들. 궁 안팎을 가리지 않고 존재했던 여인들의 한글 기록 문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건 분명 든든한 기록물입니다.

내방가사는 이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국내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등재 여부는 오는 11월 말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록유산 총회에서 결정됩니다.

한 줄 한 줄 기쁨, 눈물, 분노, 포기를 담던 그들이 기록한 삶의 노래가 수백년을 흘러 오늘 ‘들리고’ 있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MBC 유튜브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방송 화면. MBC 유튜브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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