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 보도로 10대 범죄 부풀려져”… 결국 ‘소년 재범’ 부추긴다

“자극적 보도로 10대 범죄 부풀려져”… 결국 ‘소년 재범’ 부추긴다

이근아, 김정화, 진선민 기자
입력 2020-11-10 22:08
업데이트 2020-11-1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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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범-죄의 기록] ③만들어진 분노-소년범죄 기사

2017년 문재인 정부 이후 도입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소년법 개정과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20만명 이상 동의해 정부가 답변한 1호 청원도 소년법 폐지였다. 사람들이 소년범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있다.

10대가 가해자인 사건이 발생할 때면 범행 수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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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소년범에 대해 무조건 비난하고 낙인찍는다. 이 때문에 많은 소년범은 보호처분시설에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자신을 사회가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진은 소년범들이 경기 양주시 나사로 청소년의 집에서 나간 뒤 하고 싶은 일을 그려 들어 보이는 모습.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여론은 소년범에 대해 무조건 비난하고 낙인찍는다. 이 때문에 많은 소년범은 보호처분시설에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자신을 사회가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사진은 소년범들이 경기 양주시 나사로 청소년의 집에서 나간 뒤 하고 싶은 일을 그려 들어 보이는 모습.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제2의 ○○○’ 등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 이름을 빌려 비슷한 기사를 송고하기도 한다. 여론은 소년범을 어떤 존재로 여길까. 소년범을 ‘악마’로 묘사하는 언론에 노출되면 대중은 어떻게 반응할까. 실험을 통해 알아봤다.

●“경범죄라도 소년 61개월·성인 57개월 실형”

서울신문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은주 교수 연구팀의 도움으로 일반인 1008명을 대상으로 언론 실험을 진행한 결과 피실험자들은 소년범죄 기사에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도된 사건이 경범죄든 강력범죄든 상관없이 소년범죄 발생 건수를 과도하게 측정했다. 또 갈수록 범죄가 흉포화되고 있다고 강하게 확신했다.

이런 경향을 언론학에서는 ‘배양이론 효과’로 설명한다. TV에서 범죄 드라마를 많이 시청하면 실제 일상 속에서도 범죄가 만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소년범죄가 아닌 성인범죄 기사를 읽은 피실험자도 소년범죄 발생 건수를 약 18만건으로 과도하게 추정했다. 실제 범죄 건수 6만여건의 3배다. 일종의 스필오버(물이 넘쳐흘러 메마른 논까지 흘러가는 것처럼 비슷한 다른 상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효과로 분석된다.

일반인들은 소년범죄가 급증했다는 증거로 최근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여러 사건을 떠올렸다. 한 30대 남성은 “피의자가 10대일 경우 지나치게 자세히 범죄 방법을 묘사하는 것 같다”며 “제목만 자극적이고 내용은 똑같은 뉴스가 너무 많이 쏟아져 소년범죄가 매년 급증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인식은 자녀가 있는 기혼자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자녀 기혼자는 소년범죄 기사를 읽은 다음 소년범죄 발생 건수를 평균 22만여건까지 과대 추정했다. 한 50대 기혼 여성은 “10대 청소년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아 기사를 한번 읽으면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며 “내 아이가 소년범이나 비행 청소년과 어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 소년범죄가 민감하게 다가온다”고 밝혔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소년법 개정에 대한 태도에서도 미혼 집단보다 엄벌주의를 선호했다. ‘소년범죄에 더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소년법을 폐지하고, 모든 소년범이 성인과 같은 법으로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주장에 더 강하게 동의했다.

같은 죄를 저질렀다면 피의자가 소년이더라도 성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피실험자들은 경범죄를 저지른 소년에게 평균 61개월(5년 1개월)을, 성인에게는 57개월(4년 9개월)의 징역형을 부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강력범죄 역시 소년에게는 224개월을, 성인에게는 239개월의 징역형을 부과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소년범죄 기사를 읽지 않은 일반인들도 대체로 소년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를 읽은 집단보다는 적었지만 이들 역시 소년범죄 건수(8만여건)와 강력범죄 비율(약 33%)을 실제(6만여건, 약 5%)보다 높게 추정했다. 소년법 개정에 대한 태도 역시 기사를 본 피실험자들과 큰 차이가 없이 소년범을 엄벌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클릭 수 높이려고 악마화하는 온라인 기사

범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제목을 단 기사가 소년범에 대한 인식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신문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나온 1만 1864건의 소년범죄 관련 기사의 제목을 분석한 결과 2010년대 이후 ‘잔혹’·‘흉포화’·‘악마화’·‘무섭다’ 등 범죄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담긴 단어의 사용 비율이 높아졌다. 온라인 기사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자극적 표현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 탓이다. 사건 유형과 내용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자극적으로 기사를 생성해 클릭 수를 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 밖에도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 한번 발생하면 해당 사건의 이름을 계속 사용해 연관 지으려는 시도도 흔히 발견된다. 이를테면 2017년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이후 다른 범죄가 발생하면 지역명만 앞에 붙여 ‘강릉판 부산 여중생 사건’ 등으로 소비하는 경우다.

실험을 진행한 이 교수는 “소년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개별 사건의 디테일만 부각해 선정적으로 보도할 경우 독자의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기 쉽다”고 분석했다. 이어 “해당 사건을 적절한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실제 통계를 함께 제시한다면 즉흥적 반응 대신 소년범죄라는 사회적 이슈를 큰 틀에서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더 책임감 느껴야

범죄를 저지른 10대들을 무조건 온정주의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여론이 소년범죄의 현상을 직시하는 대신 이들의 범죄를 과도하게 부풀린다면 소년범의 반복적 탄생을 막기 어렵다.

많은 소년범은 보호처분시설에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이런 자신을 사회가 받아들여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서울신문이 79명의 소년범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회에 나가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걱정되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10명 중 3명이었다. 한 아이는 “보호처분시설에 와서 처음으로 반성이라는 걸 배웠다. 소년법이 없었다면 이런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며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면 ‘한번 망친 인생, 막살자’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사회적 낙인이 오히려 소년범들의 재범을 부추긴다고 경고했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대에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리면 아이는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성인 범죄자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며 “학교와 사회 그리고 국가가 비행 성향을 처음 드러낸 소년들에게 관심을 두고 재범 방지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소년범죄를 다뤘던 ‘호통판사’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아이들을 무조건 처벌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을 아예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것이 이 문제의 진정한 해법인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현실적으로도 지금 이 아이들의 재범을 막지 못하면 결국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 아이들이 범죄에 어떻게 이르게 됐는지 그 과정 역시 사회가 책임감을 느끼고 들여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진선민 기자 jsm@seoul.co.kr

※ 서울신문의 ‘소년범-죄의 기록’ 기획기사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 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eoul.co.kr/SpecialEdition/youngOffende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2020-11-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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