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 38명 중 34명 자진귀국
60~70대 4명만 남아… 여권 무효화피랍 재발 땐 막대한 구출비용 부담
외교부 “강제귀국 수단 사실상 없다”
지난해 7월 리비아 무장세력에 납치됐던 한국인 주모(62)씨가 납치 315일 만에 풀려나 지난 18일 귀국함에 따라 피랍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리비아에는 아직 생계를 위해 불법 체류 중인 교민 4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가 60~70대인 이들은 수십년간 현지에서 거주해 국내에 생계 기반이 없고,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리비아에 체류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에는 국민 보호의 의무가 있고, 만약 또다시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19일 “주씨의 피랍 사건으로 당시 불법 체류 중이던 38명 중 34명은 자진 귀국했지만 4명은 생계를 이유로 여전히 리비아에 있다”며 “여권은 무효화시켰지만, 강제 귀국 수단은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해 12월 이들 4명에 대해 여권무효화와 함께 여권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리비아는 2014년 8월 4일부터 오는 7월 31일까지 여행금지국(흑색경보)으로 지정돼 있다.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없이 체류하면 여권법 26조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생계를 이유로 철수를 거부 중이다. 하지만 피랍 시 투입될 유무형의 비용을 감안할 때 강제 귀국이라는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주씨의 피랍으로 한국군의 문무대왕함이 급파됐고, 정부는 24시간 대응체제를 가동하며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50여차례 열었다. 한국·리비아 외교장관 회담, 리비아 특사 및 정부대표단 파견 등도 이어졌다.
다만, 현재 외교부가 리비아 정부와 협력해 이들을 강제 귀국시키기는 힘들다. 유엔이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리비아 통합정부군과 동부의 군벌인 리비아국민군(LNA)이 수도인 트리폴리에서 접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금지국 불법 체류에 대해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정부가 교민의 생계를 감안해 너무 유연하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리비아는 2014년부터 체류금지였지만 정부는 주씨가 피랍된 지난해 7월 이후에야 법적 카드를 동원했다. 또 자발적으로 귀국한 34명은 고발하지 않았다. 주씨도 불법 체류 중에 피랍을 당해 여권법 위반이지만 이들과 형평성 차원에서 고발되지 않을 전망이다.
주씨의 현지 체제비 및 귀국 항공권 등을 외교부의 ‘긴급구난지원금’으로 충당할지 여부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주씨의 체류에 관여한 국내 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주씨는 20년 넘게 리비아 수로관리 회사인 ANC에서 근무했고, 지난해 7월 6일 같은 업체의 필리핀인 3명과 함께 무장괴한에게 납치됐다. 그는 1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건강은 좋다”면서도 “살은 10㎏ 빠졌다. 음식이 맞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했다. 주씨는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돼 582일 만에 풀려난 제미니호 한국인 선원 다음으로 최장 기간 피랍됐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2019-05-2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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