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총리 낙마 트라우마에 후임인선 걱정도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들은 20일(현지시간)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의표명 소식이 전해지자 말을 아낀채 향후 정국과 여론의 향배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였다.순방 수행단에서는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전달 사실이 연합뉴스 속보를 통해 전해진 시점이 박 대통령과 오얀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막 진행되던 때여서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수행단의 한 관계자는 사의 표명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할 말이 없다”고 밝혔고, 다른 관계자는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는 총리실의 발표 내용 그대로이고 그 외에 더 할 말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행단 내부에서는 이 총리의 사의 표명에 대해 “이미 예고된 것 아니겠느냐”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박 대통령이 이번 순방 출국 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청와대에서 만나 이 총리 거취에 대해 “귀국 후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을 놓고 이 총리에게 사실상 자진사퇴의 기회를 준 것이라고 판단하는 기류가 강했다는게 수행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박 대통령이 4월 정국을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의혹의 중심에 서며 ‘식물총리’, ‘시한부 총리’라는 말이 나오는 이 총리가 더 이상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야당이 총리 해임건의안 카드까지 던지고 여당 내부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하는 형국에서 이 총리가 더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당시 ‘친일사관 논란’에 휩싸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의 국회 제출을 미룬 것도 자진사퇴의 기회를 줬던 것”이라며 “이번에 이 총리의 거취를 귀국 후 결정하겠다고 밝힌 것도 명예롭게 물러날 기회를 준 것으로 해석하는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이 총리의 자진 사의표명 형식으로 총리 거취 문제를 일단 매듭지었다 하더라도 향후 정국과 여론의 향배에는 더욱 신경을 쓰는 분위기였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이었던 지난 16일 박 대통령이 출국한 이후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이 총리에 대한 의혹 확산으로 피부로 느낄만큼 여론이 악화됐고 박 대통령 지지율도 30%대로 떨어진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완구 악재’를 일단 정리하더라도 검찰 수사 상황에 따라 ‘성완종 리스트발’ 블랙홀이 국정의 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특히 정부 출범 직전 김용준 후보자의 사퇴와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연쇄 낙마사태에 이어 도덕성 논란 끝에 어렵사리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이 총리마저 성완종 사태에 발목잡혀 사의를 표명하자 ‘총리 인사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박 대통령이 이 총리의 사의를 27일 귀국 이후 수용하기로 사실상 방침을 정한 가운데 후임 총리카드와 총리 검증 과정 등이 국정운영의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 총리 사의표명은 끝이 아니라 후임 인선 등을 감안하면 본격적인 정국 대응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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