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춤추는 듯…판자촌 화재 무방비

불이 춤추는 듯…판자촌 화재 무방비

입력 2011-06-19 00:00
업데이트 2011-06-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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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가스통 널려 있어 폭발 위험…소방차 접근 어려워’화재 공포’에 자체 소방훈련…”주거환경 개선이 우선”

“집 한 채에서 시작한 불이 삽시간에 마을 전체로 번졌다. 불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지난해 11월 화재로 마을의 절반가량이 불탄 서울 서초동의 무허가 주택 밀집지역인 ‘산청마을’ 주민 전모(62)씨는 19일 당시 마을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전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춤을 추듯 요동친 것은 LP가스통에 달린 호스였다”고 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각 가정이 개별적으로 쓰는 LP가스가 폭발하기라도 했다면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날 뻔한 상황이었다.

이 마을 판잣집들은 비닐과 목재, 스티로폼, ‘떡솜’이라 불리는 단열재 등 불에 잘 타는 이른바 ‘특수가연물질’을 재료로 지어진데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번 불이 나면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기 쉬운 구조다.

게다가 집들 사이로 난 길이 어른 한 명이 지나다니기에도 버거워 보일 정도로 좁아 소방차가 접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방당국은 산청마을을 ‘화재취약지역’으로 정해 각 가정에 화재감지기를 설치하고 소화기를 나눠줘 대형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노인이어서 소화기 사용법을 모르고 여건상 초기 진압이 어려워 일단 불이 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산청마을 주민자치회 박진규 회장은 “소방서에서 지급한 소화기가 지금은 낡아서 못 쓰는 것도 있고 실제 화재에 대비한 훈련도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지난 12일 화재로 100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개포동 ‘재건마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재건마을 주민들은 특히 수십년 동안 자발적으로 화재진압 훈련을 해왔는데도 초등학생의 불장난이 대형 화재로 번지는 상황을 막지 못해 더욱 허탈해하고 있다.

화재에 극히 민감한 이 마을 주민들은 매일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2인1조로 방범을 서고 한 달에 한 번 마을 회의가 열리는 날 소화전 사용법을 훈련하는 등 화재에 대비해왔다.

재건마을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박동식(54)씨는 “대부분 목재로 집을 짓고 비닐이나 장판을 덮어놓아 화재에 더욱 취약하다. 불이 났을 때 주변에 있던 소화기를 들고 달려들었는데 역부족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강남구가 이재민 모두에게 시내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등 구호조치를 하고 나섰지만 사후약방문식 처방보다는 화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소방서는 재건마을을 비롯한 관내 무허가 주택 밀집지역에 불이 났을 때 재빨리 초동조치를 할 수 있도록 마을회관 등지에 소화기를 다량 비치한 ‘미니소방서’를 설치하고 마을과 직통전화를 연결하는 한편 화재감지기를 각 가정에 꾸준히 보급할 계획이다.

강남소방서 관계자는 “팀을 꾸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소방차를 마을 앞에 항상 대놓을 수도 없는 만큼 열악한 주거 환경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빈곤빈민연대 가재웅 상임대표는 “집을 지을 때 쓰는 자재를 불에 잘 타는 비닐이나 합판이 아닌 불연재로 바꾸고 골목마다 소화전을 설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이 없어서 지원을 못한다고 하는데 주민에게는 생존의 문제인 만큼 법률적 접근이 아닌 실질적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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