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엘리베이터 탄 게 죄인가?” 억울한 남성들

“혼자 엘리베이터 탄 게 죄인가?” 억울한 남성들

입력 2012-07-30 00:00
수정 2012-07-3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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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ㆍ제주 성범죄 살해사건 이후 ‘경계대상’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 사는 김모(35ㆍ회사원)씨는 최근 들어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면 의식적으로 구석 쪽에 서 있는다.

아파트 단지에서 ‘예비 성범죄자’로 몰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26일 퇴근한 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 찰나, 한 여중생이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고 있었다.

평소 자주 마주쳤던 아이인데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갑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김씨는 그러나 눈앞에서 문이 ‘쾅’하고 닫히는 것을 맥없이 지켜봐야 했다.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탄 학생이 김씨가 다가가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누른 것.

당황한 김씨는 몇 분을 기다려 엘리베이터에 탄 뒤 요즘 경남 통영과 제주에서 발생한 성범죄사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경남 통영 초등생 살해사건과 제주 올레길 여성 관광객 살해사건 등 성범죄사건이 잇따르면서 김씨처럼 본의 아니게 학생이나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는 억울한(?) 남성들이 늘고 있다.

회사원 박모(34ㆍ전주시 인후동)씨도 최근 혼자 엘리베이터에 타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혹여라도 낯선 여성과 함께 타면 꼭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고 될 수 있으면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박씨는 밤늦은 시간대 술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자신이 사는 6층까지 숨을 참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백모(36)씨는 길거리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늦은밤 골목길에서 마주친 한 주민이 갑자기 함께 걷던 자녀를 품에 꼭 안은 채 자신과 거리감을 두려는 것을 느꼈다.

설마 자신 때문일까 하는 생각에 계속 길을 가던 백씨는 마주친 여중생 무리도 재잘대던 소리를 멈추고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발걸음을 빨리하자 당혹스러웠다.

백씨는 “밤에 으슥한 곳에서 여성을 만나면 갈 길을 벗어나 오히려 피해간다”면서 “괜히 함께 걸어갔다가는 치한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고 한탄했다.

네 살 난 딸을 둔 박모(39ㆍ여ㆍ전주시 서신동)씨도 최근 들어 딸과 함께 외출할 때면 인상이 어두운 남성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는 버릇이 생겼다.

틈날 때마다 어린 딸에게 이런 내용을 교육하는 박씨는 “뉴스에 나온 사건들을 보면 평소 특별한 원한이 없어도 누구나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더라”면서 “이런 교육이 각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차별적인 성범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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