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노숙인 퇴거 1년…역주변 맴돌뿐 그대로

서울역 노숙인 퇴거 1년…역주변 맴돌뿐 그대로

입력 2012-08-21 00:00
수정 2012-08-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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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인근지역 ‘출근’ 밤이면 역광장으로 ‘퇴근’市정책 효과 미미…노숙인들 “배척 눈총만 키워”

“밤낮으로 대합실에서 불호령을 듣고 쫓겨나기 일쑤지만 서울역 주변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맴돌다 밤이면 서울역 광장으로 돌아와서 눕는거지. 마음이 편하니까.”

빗방울이 흩뿌리던 18일 밤 9시. 어둑해진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노숙인 노모(64)씨가 광장 한구석에 때묻은 포장박스를 펼쳤다. 달라질 것 없는 내일이지만 그에게는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몸을 쉬게 하는 데 이만한 자리가 없다.

코레일이 작년 8월22일 심야시간대 서울역 노숙인을 강제퇴거한 지 1년.

서울시는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이후 서울역의 거리 노숙인이 10%가량 줄었다고 밝혔지만 이날 밤 광장의 노숙인은 언뜻 봐도 2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노숙인들은 보이는 수만 줄었지 서울역 주변 노숙인은 그대로라고 했다.

매주 토요일 노숙인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하는 대학생 고상윤(26)씨도 “지난해 퇴거조치 이후 지원책이 쏟아지면서 노숙자 수가 좀 줄어드는가 싶더니 지금은 예전과 별 차이 없다”고 말했다.

작년 여름 서울역사 안에서 무더위를 피했던 노숙인들은 살인적인 불볕더위가 계속된 올해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했다.

밤엔 서울역사 진입이 아예 차단되고 낮에도 단속반원과 숨바꼭질을 하는 수고를 해야 해 이들이 ‘임시거처’로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역 건너편 연세빌딩, 서소문공원, 숭례문 지하차도, 서부역이다.

1년 전만 해도 온종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지냈다던 노숙인 김모(53)씨는 “지금은 서울역 광장에서 쪽잠을 자고 아침 9시쯤 광장 물청소가 시작되면 연세빌딩과 서소문공원을 돌다 오후 6시쯤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풍선효과’가 심야가 아닌 낮에 나타난 셈이다.

풍선효과란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튀어나오는 풍선처럼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노숙인들은 퇴거조치 후 시민의 시선이 더욱 따가워졌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박모(51)씨는 “화장실에 가려 서울역사에 들어갔다가 용역에게 쫓겨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씨는 “심야가 아닌 낮이었고, 단지 화장실에 가려고 했을 뿐인데 쫓겨났다”며 “사람들이 도와주지도 않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나도 사람인데’라는 생각과 함께 화가 나더라”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본부 활동가는 “퇴거조치 후 노숙자들 마음속에 억울하게 쫓겨났다는 분함만 쌓여가고 있다”며 “공공장소에서 노숙인이라고 차별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서울역은 여전히 노숙자들에겐 떠나고 싶지 않은 ‘보금자리’다.

뇌졸중으로 손발이 불편한 정모(52)씨는 지난해 겨울 추위를 피해 영등포역 대합실로 옮겨갔다가 올 7월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그가 서울역으로 돌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역엔 무료급식소가 12곳이나 있고 의지할 ‘동료’들도 많다. 인근 갈월동과 남영동 일대에는 인력사무실도 여럿이라 하루 일감을 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정씨는 “우리도 사람인데 이유가 있어 노숙생활을 하지 않겠느냐”며 “강제 퇴거만 시키지 말고 뭔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퇴거조치에 따른 대책으로 노숙인 쉼터는 물론 임시구호방, 응급구호방 등을 운영하지만 수용인원이 적어 노숙인들이 느끼는 체감효과는 미미하다.

노숙인 서모(45)씨는 “80명 정원인 응급구호방은 지난겨울 180명이나 들어가 생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며 “쉼터도 사람이 너무 많아 차라리 종이 상자를 깔고 서울역 앞에서 자는 게 훨씬 낫다”고 했다.

노숙인을 돕는 활동가들은 무조건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선미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책임간사는 “한국과 같이 노숙인이 역으로 몰리는 프랑스는 철도연대를 중심으로 민관이 합동해 노숙인을 흡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며 “아무런 대책 없이 무조건 노숙인을 쫓아내면 갈 곳 없는 노숙인은 서울역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서기센터 김종대 현장지원팀장은 “가족과 단절된 채 지지기반 없이 서울에 일을 찾으러 왔다가 주저앉는 지방 노숙인도 매주 7~8명이나 된다. 주거와 근로의 불안정성이 해결돼야 자활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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