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대리점 직원ㆍ상담원 상대로 206차례 금품갈취

대기업 상담센터 등에서 근무하는 서비스 직원들을 협박, 2년여간 수억원어치의 금품 등을 뜯어낸 50대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가 결국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11일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장교로 군 생활을 하다 대위로 전역한 이모(56)씨는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가 번번이 실패하자 대기업을 등쳐보기로 했다.

그는 대기업일수록 소비자가 제품에 대해 부당하게 항의해도 회사 이미지를 고려, 법적 대응 등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으리라 보고 대기업 A사와 B통신사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가족과 지인 등 명의로 A사의 최신 스마트폰 22대를 B사에 개통한 이씨는 이들 단말기를 번갈아 가며 정지, 해지, 개통하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B통신사 상담원들에게 공연히 꼬투리를 잡았다. “고객 응대가 불손하다” 등 이유였는데, 1시간 이상 전화로 갖은 욕설과 협박을 늘어놓는 것도 모자라 둔기를 들고 대리점을 찾아가 행패를 부릴 정도였다.

이런 이씨에게 질린 말단 대리점 직원이나 상담원들은 상황을 넘기려고 합의금으로 일정액을 건네거나 휴대전화 요금을 자비로 대신 내주기까지 했다.

이씨는 공(空)기계 상태인 멀쩡한 A사 중고 스마트폰의 수리를 맡기고는 역시 같은 수법으로 B사 직원들을 협박, 제품 교환이나 환불에 필요한 이용계약등록사항 증명서를 편법으로 발급받기도 했다.

이용계약등록사항 증명서는 실제 해당 단말기를 개통해 사용 중일 때만 발급받을 수 있다. 또 고장으로 제품을 교환·환불했으면 기존 제품을 돌려줘야 하지만 이씨는 A사에 억지를 부려 반납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되팔아 추가 이익을 챙겼다.

수법은 이 밖에도 다양했다. A사의 냉장고를 사서는 “고장났다”며 수리를 의뢰했다. 직원 도착 직전까지 냉장고를 꺼놨다가 켜고는 “어떻게 냉장고 온도가 이럴 수 있나”라며 따지고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협박, 금품을 뜯어내기도 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바람에 A사와 B사 직원들이 이씨가 있는 지방까지 내려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이씨는 이런 수법으로 2010년부터 올해까지 206차례에 걸쳐 두 업체 직원들로부터 2억4천만원 상당의 금품과 전자제품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견디다 못한 업체 측에서 경찰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찰은 이씨의 소재를 뒤쫓은 끝에 지난달 말 지방에서 그를 붙잡아 사기, 공갈, 업무방해 등 혐의로 최근 구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객한테서 싫은 소리를 들어도 참아야만 하는 콜센터나 대리점 직원 등 ‘감정노동자’의 약점을 잡은 범행이어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