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 가해자에 대한 ‘진심의 용서’

제주4·3사건 가해자에 대한 ‘진심의 용서’

입력 2014-04-01 00:00
업데이트 2014-04-0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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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갈등의 고리 끊자, 우리 모두 시대의 피해자”

10여년 전 제주4·3연구소가 주관해 열린 ‘제주4·3증언본풀이장’. 정문현(69)씨의 어머니 양춘영(91)씨가 4·3 당시 피해를 증언하려고 용기를 내 나섰다. 그러나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제대로 증언을 하지 못했다.

정씨의 아버지는 4·3 당시 억울하게 형무소로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정씨는 어머니도 경찰지서에서 모진 고초를 당해 겨우 목숨만 부지했던 터였다.

정씨 가족의 비극은 가까운 사이였던 이웃의 잘못된 밀고가 발단이 됐다. 당시 아버지와 숙부는 단지 살려고 산에 올라갔을 뿐인데 이웃이 ‘무장대를 도왔다’는 누명을 씌워 경찰에 신고해 버렸다.

이후 당시 20대 초반의 숙부는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알고 지내던 이웃동네 주민들로부터 대나무 창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정씨는 어머니가 이로 인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클뿐더러 4·3 이후에도 마을에서 서로 이웃해 사는 사람들끼리 적이 돼 보복의 역사가 되풀이될까 우려했기 때문에 쉽게 4·3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다른 4·3유족인 홍성수(69)씨도 기막힌 사연이 있다. 4·3 당시 제재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이웃의 모략으로 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이 가족을 비극으로 몰고 간 이웃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홍씨의 초등학교 동창생의 부친이었다.

혈연관계가 얽힌 좁은 지역사회에서 무장대 진압에 나섰던 일부 서북청년단 등이 피해자와 한마을에 살게 되면서 이와 유사한 사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인 이들이 한마을에 살아야 했기에 평온을 위해 4·3을 이야기하는 것을 가슴속에 묻어야만 했던 아픔도 이어졌다.

제주4·3은 1954년 9월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돼야 사실상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제주 땅에 사는 이들에게는 4·3은 완전히 막을 내린 게 아니었다.

제주4·3유족회에 따르면 ‘4·3’의 앙금으로 1950년대 말까지 마을별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진압을 했던 경찰 가족이나 서북청년단 가족이 다른 쪽으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했다. 혹은 무장대의 가족, 이들을 도왔다고 오해를 받은 가족도 같은 피해를 봤다.

홍씨는 “당시 마을 청년들이 어느 한 사람의 가족을 끌어내 돌팔매질을 해댔다. 폭도 출신이라고 해서 혼났고 경찰의 앞잡이였다고 해서 혼났고 서북청년단 출신이라서 혼이 났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족회의 반대편에서 줄곧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전직 경찰 출신 단체인 제주도재향경우회 현창하 회장은 “현재도 여전히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도 4·3 이야기만 나오면 갑자기 원수처럼 얼굴을 붉힌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라며 침울해했다.

이렇듯 4·3의 상처로 인한 뿌리깊은 갈등으로 제주도민들의 내면엔 상처가 그대로 전해지고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어 그 뒤 세월이 많이 흘러서야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하려는 작은 움직임들이 시작될 수 있었다.

’4·3’이 65주년을 맞은 지난해 유족회와 경우회는 손을 맞잡고 갈등치유에 노력하기로 했다. 경우회는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희생 영령들에 참배도 했다. 이 배경에는 용기 있는 ‘용서’와 ‘화해’가 있다.

정씨는 “그분들(가해자)도 시대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살려고 남을 죽여야 했던 시대의 피해자”라며 “억울하고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처럼 4·3유족 대부분은 가해자를 가려내 처벌을 하길 바라지 않는다”며 “다시는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죽이고 또 죽여야만 하는 야만의 시대가 없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홍씨도 “4·3의 정신은 화해와 상생”이라며 “역사는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서로에 대한 증오까지 물려줘서는 안 되기에 용서하기로 친지들과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경우회장 현씨는 최근 일부 보수단체가 4·3희생자 위폐 중 ‘폭동의 주범이 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입장에서 4·3을 바라보고 우선 억울한 죽음 앞에 추념하는 게 갈등의 반목을 끊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현재까지 신고를 받아 결정한 관련 희생자(행방불명자 포함)는 1만4천32명, 유족은 3만1천253명이다. 추가로 희생자 326명, 유가족 2만8천426명을 접수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도 4·3은 성격규명에 대한 논란으로 명확한 정의를 미룬 채 ‘사건’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념과 거리가 먼 대다수의 억울한 희생과 이후 갈등을 용서와 화합으로 풀어내자는 이들의 노력에 정부는 66주년을 맞는 올해 희생자 추념일을 국가 기념일로 공포, 화답했다.

제주4·3유족과 경우회는 “보듬어 안고 서로 아픈 가슴을 달래주자, 우리가 모두 시대의 피해자 아니냐. 그런 정신에서 화해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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