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일가족 4명 참변…방화 혐의 어떻게 밝혀냈나

양양 일가족 4명 참변…방화 혐의 어떻게 밝혀냈나

입력 2015-01-08 21:42
수정 2015-01-0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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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탈출 흔적 없어…유증 및 수면유도제 성분 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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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송되는 양양 방화사건 용의자
압송되는 양양 방화사건 용의자 지난달 29일 양양군 현남면 정자리에 발생한 일가족 4명 참변 화재 사건의 방화 용의자인 이모씨가 8일 서울에서 검거돼 속초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의문투성이였던 양양 일가족 4명의 주택화재 참변은 사건 발생 11일 만에 평소 알고 지내던 40대 여성 지인의 방화로 밝혀졌다.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이 사건은 경찰 등의 꼼꼼한 현장 감식과 끈질긴 탐문 수사로 그 전모가 드러났다.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9시 38분께 양양군 현남면 정자리 박모(39·여)씨의 2층 주택에서 발생했다.

이날 불은 1시간 20여 분만에 진화됐다. 당시 1층은 빈집이었다.

그러나 박씨와 딸(9)은 작은방, 큰아들(13)은 거실 소파, 막내아들(6)은 작은방 입구에서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펑∼펑’ 소리가 난 뒤 불길이 치솟았다”는 이웃 주민 등의 진술로 미뤄 가스 폭발에 의한 단순 주택화재로 추정했다.

그러나 사건 다음 날인 30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참여한 합동 현장 감식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문점이 발견됐다.

우선 숨진 일가족 시신의 상태가 대피나 탈출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불이 나면 본능적으로 출입구 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시신은 출입문에서 주로 발견되고 웅크린 형태를 띤다.

하지만, 박씨와 세 자녀는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자듯 천장 방향을 바라본 채 발견돼 방화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하게 했다.

여기다 방안과 거실에서 유증(휘발유) 흔적을 찾아냈고, 숨진 일가족의 기도에서 그을음 흔적 등 질식사 소견도 나왔다.

이때까지 만해도 경찰은 2년 전 남편의 교통사고로 어려워진 생활고를 비관한 박씨가 어린 세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점도 염두에 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제3의 인물에 의한 방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것은 숨진 일가족 4명 모두의 혈액과 위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숨진 박씨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면 박씨의 몸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또 사고가 난 박씨의 농가 주택 출입문이 늦은 시간임에도 잠기지 않은 점은 누군가 외부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러 정황 증거를 통해 방화 가능성을 확신한 경찰은 숨진 박씨의 주변인으로 탐문수사를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숨진 박씨와 학부모 모임을 통해 알고 지내던 이모(41)씨가 용의 선상에 올랐다.

이씨는 사건 당일 참고인 조사 중에 다른 지인들과 달리 박씨의 자살 가능성을 유일하게 진술했다. 일부 진술 번복은 물론 지병을 핑계로 쓰러지는 등 이상한 행동도 보였다.

결정적으로 이씨가 범행 당일 강릉지역의 병원에서 사망자들의 몸에서 검출된 것과 유사한 수면유도제 성분이 든 약을 처방받아 약국에서 구입한 사실을 확인한 경찰은 이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행적을 추적했다.

결국, 경찰은 이날 이씨의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영장을 발부받아 범행 당시 이씨가 입었던 옷과 각종 채권·채무 기록을 확보했다.

담당 경찰은 “사건 초기 방화 가능성은 열어뒀으나 이날 검거된 이씨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혀내기까지는 꼼꼼한 현장 감식과 끈질긴 탐문 수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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