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더 슬픈 양민학살 유족들…6·25의 비극

명절이면 더 슬픈 양민학살 유족들…6·25의 비극

입력 2015-02-18 09:46
업데이트 2015-02-1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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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서 제사…유해발굴 현장 컨테이너에 300구 이상 방치”발굴·신원확인 등 국가 관심 절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민족의 명절 설, 즐겁기는커녕 가슴이 미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6·25 전쟁 당시 극심한 좌우대립으로 인한 양민학살로 부모와 형제자매를 잃고도 유골을 수습하지 못해 수십년간 성묘조차 제대로 못 하는 유족들의 이야기다.

서울 금천구 자택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박옥희(82·여)씨는 65년 전 ‘공주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에 휘말려 부친이 살해된 얘기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당시 국군 방첩부대와 헌병대, 지역 경찰은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지역 내 국민보도연맹원 400여명을 공주 왕촌지역에 모아 놓고 학살했다.

박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 보도연맹 명부에 이름이 적힌 아버지는 어느 날 밤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끌려나갔고, 며칠간 조사를 받은 뒤 무릎을 꿇은 채 트럭 짐칸에 실려 나갔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자 당신이 쓰시던 손수건 한 장을 몰래 던져주신 게 마지막이었다”며 “몇 달 뒤 어머니도 아기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후에도 경찰은 당시 17살이던 박씨를 매일 같이 찾아와 조사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결혼을 핑계로 상경했으나 정보 당국의 감시는 계속됐고 ‘빨갱이’란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박씨는 “숨죽여 사느라 아버지의 이름도 꺼낼 수 없었지만 어딘가에 살아 계실 것이란 희망을 품고 버텼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큰 돌에 아버지의 이름 석 자를 새겨 어머니의 묘에 함께 묻었다.

묘 인근에는 당시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된 현장이 있다. 그래서 매년 명절마다 어머니 묘와 발굴 현장을 찾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희생자들이 억울하게 살해됐다는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을 받아든 순간 ‘아버지가 정말 돌아가셨구나, 어딘가 살아계신 게 아니라 돌아가셨다고 국가에서 판결 내린 것이구나’ 생각돼 판결문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82살의 고령인 박씨는 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제대로 된 묘를 만드는 게 세상과 이별하기 전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주도로 공주 지역에서 발굴된 378구의 유해에서 그의 아버지를 찾아내기는 요원해 보인다. 2010년 진실화해위 해산 이후 별다른 후속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의 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나정태(68)씨 역시 10년째 허허벌판에 있는 컨테이너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컨테이너에는 2005년 유족들이 직접 발굴한 유해 80여구가 들어 있다.

나씨는 “2007년부터 유전자 검사로 누구 유해인지라도 알려달라고 수없이 요구했지만 정부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우리 손녀는 컨테이너가 증조 할아버지 묘라고 하면 ‘왜 무덤이 없느냐’고 묻는다”며 “우리의 아버지들이 유해도 발굴 못 하고 저렇게 내버려질 죄를 지었느냐”고 되물었다.

18일 한국전쟁유족회에 따르면 1995년 이후 현재까지 전국 10여곳에서 학살 희생자들의 유해 2천90구 이상이 발굴됐다. 충북대 추모관에 1천617구, 고양시 하늘문 추모공원에 153구가 각각 안치됐으나, 여전히 300구 이상이 발굴 현장 컨테이너 등에 방치돼 있다.

조동문 한국전쟁유족회 사무국장은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을 편히 모시는 것은 이념의 잣대와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정부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는 “한국전쟁 기간 민간인 학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아픈 기억”이라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공동체가 국가 권력과 이념에 의해 희생당했던 사람들을 끌어안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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