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돌 던진 비정규직… “남은 차별도 인정받을 것”

서울대에 돌 던진 비정규직… “남은 차별도 인정받을 것”

이슬기 기자
입력 2015-07-19 18:06
업데이트 2015-07-19 19:5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기간제 차별’ 중앙노동위 확인 받은 서울대 직원 박수정씨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제가 받았던 여러 가지 차별 중에 일부만 인정을 받은 거여서 아직은 갈 길이 멀지요. 나머지 부분도 인정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뛸 겁니다.”

이미지 확대
박수정씨
박수정씨
그토록 기다렸던 결과가 나왔지만 그의 목소리는 사뭇 담담했다.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정부에 비정규직 차별 시정을 요구해 ‘일부 차별 인정’을 받아낸 서울대 미술관 계약직 비서 박수정(25)씨. 지난 7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서울대는 명절휴가비, 정액급식비, 맞춤형 복지포인트 등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한 전문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박씨는 2013년 10월 서울대 미술관의 1년 계약직 비서로 채용됐다. 첫 직장이 서울대라니, 주위의 부러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뿌듯함도 잠시, 한 달이 되지 않아 그 자부심은 점점 사라져갔다.

통상적인 비서 업무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미술관 대관, 회계 업무 등 법인 직원들이 하던 일까지 던져진 것. 그런데도 받는 돈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웃도는 월 120만원이었다. 박봉은 물론이고 법인 직원들이 받는 복리후생 혜택도 전혀 없었다. “점점 직장 이름 말하기가 싫어져서 누가 ‘무슨 일 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사무직이요’라고 얼버무리게 됐어요.”

재계약 과정에서도 수당·상여금 요청을 번번이 거부당한 박씨는 결국 올 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냈다.

‘골리앗’을 상대로 한 ‘다윗’의 싸움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저는 검찰이나 경찰처럼 노동위가 다 조사를 해주는 줄 알았는데, 신청인이 모든 걸 증명해내야 한다는 거예요. 묵묵부답인 학교를 상대로 자료를 청구하고 받아내는 일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박씨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해 법인 직원들과 나눠 하던 일에서 제외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4월 차별시정 신청이 기각되고 말았다. 하지만, 박씨는 포기하지 않고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고 이번에 ‘일부 차별 인정’이란 성과를 얻어냈다.

“사람들에게 ‘대학 비정규직이라는 게 원래 그런 자리’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제 후임자가 와서 제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일을 겪을 거라 생각하니 속도 상하고….”

박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학교 내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을 만나 볼 생각이다. “학교에 1000여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있지만 다들 서로의 사정을 모르고 살아요. 같이 만나서 속 시원히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기본급 인상, 성과상여금·정근수당 지급 등 이번에 기각된 내용들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죠.” 골리앗에 가장 먼저 돌멩이를 던졌던 다윗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는듯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15-07-20 29면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