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정은희 사망 수사 ‘외국인 배제’ 치명적 실수

여대생 정은희 사망 수사 ‘외국인 배제’ 치명적 실수

입력 2015-08-12 19:41
수정 2015-08-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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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의혹에도 교통사고로…2차 수사에도 주변 인물만 조사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피고인이 무죄를 받아 영구미제 가능성이 높아진 17년 전 여대생 정은희씨 사망 사건은 수사 초기부터 외국인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게 치명적인 실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당시 대구달서경찰서 수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사건 초기부터 현장이 고속도로 위라는 점에서 정씨가 직접 사망한 원인이 교통사고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중간 간부였던 A씨는 “단순 교통사고인지 다른 범죄 연관성이 높은지는 현장에 나간 경찰관들이 파악하는데, 당시에는 현장 출동자들이 교통사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건 담당자 B씨도 “사고를 낸 23t 트럭 헤드라이트 부분에 숨진 정은희씨의 머리카락이 발견되고 시신도 차에 의해 많이 훼손됐기 때문에 당시에는 교통사고 외에 특별히 다른 범죄를 의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1학년)씨는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대구시 달서구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23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사고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양 속옷이 발견됐다.

그러나 경찰은 교통사고에 초점을 맞춘 채 사고 트럭 운전사 등을 상대로 조사하는 등 두 달 가까운 수사 끝에 1998년 12월 말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했다.

그 뒤 유족 등이 사고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속옷 등을 근거로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등 끈질기게 재수사를 요구했다. 이에 경찰은 1999년 3월 국과수에 속옷 감정을 의뢰하고 사실상 재수사에 나섰으나 정씨 속옷에서 나온 DNA의 주인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게다가 유족의 요구 등에 따라 숨진 정씨 주변 인물을 상대로 한 수사에도 집중했다.

경찰은 정씨 주변 인물 가운데 군입대한 사람 등 몇 명을 직접 찾아가 구강에서 DNA를 채취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수사에도 정씨의 정확한 사망 경위와 성폭행한 범인을 밝혀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그 뒤 수사기록은 15년 가량 먼지를 덮어쓴 채 경찰 형사반 창고에 들어있었다.

그러다가 2013년 6월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스리랑카인 K씨의 DNA가 정씨의 속옷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 15년간 베일에 싸였던 범인 윤곽이 드러났다.

대구지검이 이 사건의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던 건 2010년 시행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에 따라 K씨의 DNA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K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공범 2명은 이미 2001년과 2005년에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간 상태였다.

대구지검은 이후 끈질기게 수사를 벌여 작년 5월 특수강도강간혐의로 K씨를 법정에 세웠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특수강간, 특수강도 혐의를 각각의 범죄로 보고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면소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공소시효(15년)가 남아 있는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내 거주 스리랑카인 노동자들을 전수조사까지 했다. 이 결과 공범 D의 지인이라고 자신을 밝힌 스리랑카인 H씨가 새로운 증인으로 나타났다.

H씨는 1998년 겨울에 지인 10명 정도 모인 자리에서 D에게서 범행 과정과 전반적인 내용을 10분∼15분 전해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에 검찰은 변경한 공소장에 H씨의 증언을 전문진술(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에 의존한 진술)로 기술하고 지난 11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그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재판부는 “H씨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고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며 K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피해자 속옷에서 나온 정액의 유전자가 피고인 유전자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감정 결과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이 단독으로 혹은 공범들과 함께 피해자를 강간하는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공소시효(10년)가 끝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3명의 범인 가운데 2명이 이미 우리나라를 떠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결국 정씨 사망사건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 3명에게 집단성폭행 당한 뒤 고속도로에서 죽음을 맞이한 불행한 일이었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그렇지만 17년이라는 긴 세월 탓에 범인을 잡고도 단죄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매듭지어지는 상황이다.

초동수사 부실로 정은희씨 사망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을 수 있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내·외국인 모두를 상대로 성폭력 부분을 수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사건 담당자들이 교통사망사고로 종결한 사안으로만 판단해 외국인 범죄 가능성 등 다각도의 수사를 하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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