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법 시행 후 재정착난민 22명 국내 첫 입국…자녀 교육에 큰 관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서로의 손을 붙잡은 미얀마 난민 22명이 환히 웃으며 법무부 인솔자를 따라 외쳤다.
‘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23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미얀마인들이 입국심사장 앞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입국 후 난민인정자 지위를 부여받고 국내에서 거주자격(F-2) 비자로 체류한다. 초기 6∼12개월간은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머물며 한국어, 기초 법질서 교육 등을 받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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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등에서 나온 관계자 20여명은 입국심사대 앞에서 이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태국의 더운 날씨 탓에 대부분 얇은 옷차림을 했고 몇몇은 반소매 차림이었다.
네 명의 가장들은 대표로 남색 겨울용 패딩 점퍼를 선물 받아 그 자리에서 입어보기도 했다.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아이들은 어느새 긴장이 풀렸는지 형제들과 장난을 치며 개구쟁이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4월에 태어났다는 나이우씨의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취재진을 바라봤다.
아내, 다섯 자녀 그리고 조카 1명을 데리고 국내로 들어온 쿠 뚜(44)씨는 미얀마어로 “한국에 오게 돼 감사드립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미얀마 라카인주 출신인 그는 1993년 미얀마 내 오랜 전쟁으로 징집될 것을 피해 아내와 큰딸을 데리고 태국 메라 캠프로 들어갔다고 했다.
난민들의 캠프 생활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풍족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나뭇잎으로 만든 집에서 살았고, 대나무를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은 것이 도로였다.
캠프 밖 이동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캠프 안에서 일하면 하루 일당이 150바트, 한국 돈으로 6천원 정도밖에 안 돼 난민들은 돈을 벌려 캠프 밖을 전전했다.
쿠 뚜씨도 캠프를 지키는 태국 내무부 관리인의 눈을 피해 캠프 주변 벌목공장에서 몰래 일을 했고, 2006년엔 지뢰를 밟는 사고를 당해 의족을 하게 됐다고 했다.
법무부가 애초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추천받은 한국 재정착난민 대상자는 일곱 가족으로 모두 38명이었다.
하지만 두 가족은 면접에 참석하지 않았고, 나머지 한 가족은 한국 재정착 의사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심사에서 탈락했다.
최종 선발된 네 가족은 면접에서 목공, 농사일, 선생님 등 각자의 꿈을 말하며 한국에서 시작할 새 삶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했다.
캠프 안에서 드라마 대장금 등 한류가 인기라는 말에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틀어주자 쿠 뚜씨 아이들은 신나게 말춤을 추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이 재정착 나라로 한국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한국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교육 때문이었다고 정금심 법무부 난민과 계장은 했다.
그는 “이들 네 가족이 한국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고, 아이들을 잘 교육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김영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우리나라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고 오늘 그 첫 결실을 보았다”며 이들의 정착을 위해 국민의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 지원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달 21일 태국 메솟(maesot)에 있는 국제이주기구(IOM) 센터에서 사전 교육을 마치고 9시간 넘게 2층버스를 타고 방콕으로 이동했다.
방콕 수완나폼공항에서 5시간 동안 출국허가 절차를 밟고 비행기를 타고 이날 오전 0시 55분(현지시간)에 출발해 오전 7시 5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난민인정자 지위를 부여받고 국내에서 거주자격(F-2) 비자로 체류한다.
이날 인천 난민센터로 이동하고 초기 6∼12개월간은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머물며 한국어, 기초 법질서 교육 등을 받는다.
교육이 끝나면 포천 등에 있는 카렌족 공동체, 종교 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정착지를 선택하게 된다고 법무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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