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썰매 종목 단체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열기를 등에 업고 2000년대 후반부터 유망주 육성에 힘을 쏟았다. 권모(21)씨도 그중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운동에 재능을 보인 권씨는 원래 복싱 선수였다. 그러나 대한루지경기연맹의 권유에 루지로 전향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아직 세계 수준에 한참 뒤떨어지는 한국 루지였지만 권씨는 동료와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2018년 평창에서 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오르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된 훈련을 견뎠다.

　성장세는 가팔랐다. 2013년 2월 초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나선 팀 계주에서 10위를 차지하는 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대표팀 코치 이모(32)씨의 폭행과 가혹행위가 권씨의 꿈을 꺾었다.

　2012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대표팀 훈련에서 권씨는 짐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썰매 날로 허벅지와 엉덩이를 맞았다.

　이듬해 2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권씨는 훈련중 썰매가 전복돼 머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병원에서 뇌내출혈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이씨의 폭행은 계속됐다.

　그해 9월 권씨는 평창 숙소 근처의 PC방에서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이씨에게 들켰다. 이씨는 숙소를 무단 이탈했다는 이유로 권씨의 뺨을 때리고 코를 머리로 들어받았다. 부상 부위인 머리를 승합차에 대고 짓누르기도 했다. 권씨는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거듭된 이씨의 폭행에 신음하던 권씨는 이어진 노르웨이 전지훈련에서 팔 부상을 입자 결국 대표팀을 이탈해 홀로 귀국했다. 남은 동료들은 두 달 뒤인 2013년 11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으나 권씨는 혼자만 꿈을 접어야 했다.

루지연맹은 무단이탈을 했다는 이유로 권씨에게 자격정지 2월의 징계를 내렸다. 권씨는 “왜 피해자가 징계를 받아야 하느냐”며 징계 무효와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동부지법 제14민사합의부(부장 박창렬)는 권씨가 이씨와 루지연맹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는 국가대표 선수를 보호해야 할 지위에 있었음에도 술에 취해 과도하게 폭행했으며 권씨가 머리 부상을 입은 사실을 알면서도 폭행해 상당한 정신적인 충격을 줬다”면서 이씨가 권씨에게 1392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권씨에 대한 징계를 무효로 보고 이 징계로 받지 못한 훈련비 522만원도 루지연맹이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