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 수사권, 검찰도 가져야” 의견도 표명
20년 가까이 ‘추진과 무산’을 반복해 오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구체적 도입 방안을 논의하는 단계에서 검찰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관련 법안에 담긴 원론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문무일 검찰총장은 13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 출석해 공수처 도입에 관한 질문을 받자 “공수처가 도입된다면 위헌적인 요소를 빼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공수처 도입 과정에서 3권분립 등 헌법에 어긋난다는 논쟁이 있다”며 “그 부분을 제거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행정부로부터 독립한 공수처에 수사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사작용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현행 헌법의 삼권분립 취지에 부합하는데, 공수처를 행정부 산하에 두도록 법안을 바꾸지 않으면 위헌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게 문 총장의 의견이다.
물론 문 총장은 이날 회의에서도 공수처 도입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렇더라도 정부 명의의 공수처 법안을 낸 법무부도 문제 삼지 않았던 위헌 문제를 문 총장이 전격 거론한 점을 두고 논란이 일 조짐이다.
공수처가 독립적인 국가기관이어야 한다는 점을 두고 국회나 정부가 이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검찰이 ‘위헌 소지’ 의견을 꺼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회가 공수처 도입에 필요한 각론을 논의하려는 시기에 검찰이 원론적 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실상 공수처의 위상부터 다시 검토하자는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위헌적 요소가 우려된다면 사개특위의 활동이 본격화하기 전에 검찰이 법무부 등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사실상 공수처 제도를 원점 재검토하자는 뜻을 담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수처 도입 논의는 20년째 이어져 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에 법무부 주도로 ‘공직비리수사처’를 만들고 당시 부패 사정의 중추였던 대검 중앙수사부의 기능을 대신하는 방안이 추진됐었다.
이후 역대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 공직부패수사처, 특별수사청(특수청) 등 다양한 명칭으로 고위공직자의 부패 사건을 수사할 별도의 사정기관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돼 왔다. 기구를 행정부 산하에 둘지,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킬지 등도 검토 대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과거보다 강한 동력으로 제도 도입이 추진됐고 올해 1월부터는 논의 기구가 국회 사개특위로 일원화됐다. 공수처 도입 논의가 구체적 법안 내용을 가다듬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나온 문 총장의 ‘위헌 소지’ 지적은 줄곧 공수처 도입에 우려가 많았던 검찰의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법조계 일각에서 나온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전직 대통령을 2명이나 피의자로 수사하는 등 성역 없는 부패 사정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발판 삼아, 최고 사정기구로서의 위상을 단단하게 회복하려는 의도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문 총장은 이날 공수처뿐 아니라 검찰 역시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한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공수처 수사대상에 대해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를 배제할 경우 고위공직자 부패수사의 공백이 우려되므로 기존 수사기관의 부패수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수사권을 함께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법조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의 검찰이 어느 때보다 큰 수사 성과를 낸 게 아니냐”며 “이런 때는 공수처의 도입 논의가 큰 관심을 얻지 못할 수 있고 검찰 역시 이런 사정을 의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