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항일 학생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김상길 선생이 별세했다. 92세.
23일 광복회에 따르면 김 선생은 지난 22일 오후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 선생은 대구상업학교 학생이던 1942년 동료들과 조국 독립에 헌신키로 맹세하고 항일 학생운동 단체인 ‘태극단’을 결성했다. 태극단은 일본군 입대 반대 등 일제에 대한 항거를 고무하는 유인물을 배포했고 주변 학교로 조직을 확대했다. 학술연구토론회를 비밀리에 여는가 하면 폭발물 제조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태극단 활동은 1943년 일제 경찰에 적발됐고 선생은 수업 중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았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당시나 지금이나 대구가 특별히 항일 정신, 선비 정신이 강한 곳”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으로는 아들 영남·영진·용준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고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23일 광복회에 따르면 김 선생은 지난 22일 오후 숙환으로 숨을 거뒀다. 선생은 대구상업학교 학생이던 1942년 동료들과 조국 독립에 헌신키로 맹세하고 항일 학생운동 단체인 ‘태극단’을 결성했다. 태극단은 일본군 입대 반대 등 일제에 대한 항거를 고무하는 유인물을 배포했고 주변 학교로 조직을 확대했다. 학술연구토론회를 비밀리에 여는가 하면 폭발물 제조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태극단 활동은 1943년 일제 경찰에 적발됐고 선생은 수업 중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았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당시나 지금이나 대구가 특별히 항일 정신, 선비 정신이 강한 곳”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으로는 아들 영남·영진·용준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고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2018-04-24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