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노파 피살사건 ‘반전에 반전’…12년 만에 검거 → 무죄 석방
1㎝의 쪽지문(부분 지문)을 둘러싸고 진범 공방을 벌이는 강릉 노파 살해사건의 항소심 첫 공판이 오는 25일 열린다.십수 년 만에 검거된 유력용의자가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석방되는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 사건의 항소심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13년 전인 2005년 5월 13일 낮 12시.
강원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에 사는 A(여·당시 69세)씨가 손과 발이 묶여 누군가에 의해 피살된 채 발견됐다.
혼자 사는 A씨가 숨져 있는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해 신고한 사람은 이웃 주민이었다.
당시 신고 주민은 “현관문과 안방 문이 열린 채 TV 소리가 들리는데도 인기척이 없어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A씨가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숨진 A씨의 얼굴에는 포장용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고, 손과 발은 전화선 등으로 묶인 상태였다.
A씨의 안방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있었고, A씨의 금반지 등 80여만원 상당의 귀금속도 없어졌다.
부검 결과 A씨의 사망 원인은 기도 폐쇄와 갈비뼈 골절 등 복합적인 원인이었다.
경찰은 범인이 포장용 테이프로 얼굴을 감아 숨을 쉬지 못하게 한 뒤 저항하는 A씨를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인 경찰은 범인을 어렵지 않게 검거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강원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전담팀이 지난해 9월 A씨를 살해한 범인으로 정모(51)씨를 검거하기 전까지 도내 대표적 장기 미제 강력사건이었다.
경찰이 정씨를 유력용의자로 검거한 가장 강력한 단서는 포장용 테이프에 남아 있던 1㎝ 길이의 쪽지문이었다.
경찰은 저항하는 노파의 얼굴을 포장용 테이프로 칭칭 감아 제압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자신의 지문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에는 지문을 이루는 ‘융선’(지문 선)이 뚜렷하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이후 경찰은 과학수사 기법인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을 통해 정씨를 강릉 노파 살해사건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정씨의 검거로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1심 재판 과정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15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9명 중 8명도 정씨가 무죄라고 판단했다. 구속됐던 정씨는 곧바로 석방돼 자유의 몸이 됐다.
강릉 노파 살해사건은 이렇게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의 쟁점은 이 사건 유력 증거인 포장용 테이프 안쪽 속지에 남은 정씨의 지문 일부가 범행 과정에서 찍힌 것인지, 범행과는 무관하게 어떠한 경위에 의해 남겨진 것인지다.
1심 재판부는 “지문감정 결과에 의하면 정씨가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 “그러나 범행과는 무관하게 남겨졌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며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 증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판단인 셈이다.
정씨도 1심 재판에서 “범행 현장에 간 적도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포장용 테이프에 자신의 쪽지문이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경찰과 검찰은 유력 증거인 쪽지문 이외 정씨가 빠져나갈 수 없는 또 다른 정황 증거를 보강해 항소심 재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치열한 진범 공방이 예상되는 강릉 노파 피살사건의 항소심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과연 진범은 가려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