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으로 마주 보던 남북, 마음에 그은 선 이제는 지워야”

“편견으로 마주 보던 남북, 마음에 그은 선 이제는 지워야”

입력 2018-04-27 22:54
업데이트 2018-04-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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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경희가 본 文대통령·金위원장 ‘4·27 만남’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책상 한가운데 선명한 줄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좁은 책상을 시커먼 크레파스로 그어 놓고는 나더러 선을 넘어오면 절대 안 된다고 눈에 힘주며 말한 사람은 내 짝이었다. 내가 그 아이보다 덩치도 크고 공부도 잘했는데, 이상하게 책상을 분리하고 있는 검은 선만 보면 주눅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짝 역시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하느라 물건을 떨어트리기 일쑤였고 팔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공부했다. 그러나 책상 위 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생님의 중재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놈의 선이 얼마나 불편한 존재인지 오래되지 않아 깨닫고는 지우개로 싹싹 지워 버렸다. 학생수가 많았던 내 초등학교 시절의 흔한 교실 안 풍경 얘기다.
이경희 소설가
이경희 소설가
2018년 4월 27일 10㎝도 안 되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이 온 세계의 눈을 사로잡았다. 6·25전쟁 이후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 최고지도자는 처음이다. 남북 정상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에 이어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두 차례의 만남을 가졌다. 이번처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온 것은 처음이기에 이번 정상회담이 주는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첫 상징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측 군사분계선으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마중 나간 데서부터 시작됐다. 판문각에서 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측 군사분계선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자연스럽고 편안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불과 200여m의 거리였다. 마침내 만난 두 정상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했고, 정전 65년이란 속절없는 역사를 만든 군사분계선을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잡고 넘나들었다. 김 위원장의 말대로 사람이 넘지 못할 정도로 높은 턱이 아니었다. 높지 않기에 자주 밟으면 없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울림이 컸다. 너무 긴 선도 아니고 너무 두껍고 단단한 무엇도 아니었다. 두 정상은 마치 어제 만난 친구처럼 반가운 얼굴로 군사분계선의 남측과 북측을 가볍게 오간 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했다.

나만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군사분계선에 선 두 정상을 지켜보자니 서글픔과 회한이 몰려왔다. 오래전 자신이 그었던 책상 위 선을 지우개로 열심히 지우면서 날 보며 웃던 짝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선 때문에 느낀 그동안의 설움과 회한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군사분계선에 선 두 정상의 모습에서 염려나 의심이 아닌 따스한 기우를 읽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선보다 내면의 선을 더 굵고 진하게 그려 놓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나 역시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 그 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을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때문에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곧 저 군사분계선이 더이상 아무 의미 없는 누구나 밟고 건너갈 수 있는 하나의 턱이고 문지방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도 많지만 북·미와 북·중 등 이웃 국가와의 문제도 산적해 있다. 하지만 믿고 싶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우리는 더이상 예전 같은 시선으로 군사분계선을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가 선을 긋고 만들었든 선이 있는 이상 양쪽 모두 불편하고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경희 작가 약력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도베르는 개다’, 장편소설 ‘불의 여신 백파선’, ‘기억의 숲’, 산문집 ‘에미는 괜찮다’ 등을 냈다.
2018-04-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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