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전직 법원 최고위층 전격 압수수색…수사 분수령되나

‘재판거래’ 전직 법원 최고위층 전격 압수수색…수사 분수령되나

김태이 기자
입력 2018-09-30 15:17
수정 2018-09-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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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압수영장 기각하던 법원, 불어나는 물증·진술에 ‘백기’

30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 3명에 대한 압수수색이 ‘사법농단’ 실체 규명을 위한 검찰 수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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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중인 고영한 전 대법관 주거지
압수수색 중인 고영한 전 대법관 주거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30일 양승태 사법부의 최고위층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이날 오후 압수수색 중인 고영한 전 대법관의 서울 종로구 주거지에 커튼이 쳐져 있다. 2018.9.30
연합뉴스
지난 석 달여간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 시도를 번번이 가로막아온 법원이 결국 이들의 일부 혐의가 소명된다고 판단하고 영장을 내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법원은 전직 대법관들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의 재판에 개입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대법관이 공모했다는 소명이 부족하다’, ‘대한민국 대법관이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왔다.

영장전담 판사들의 이런 판단은 각종 재판거래 의혹의 ‘정점’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고등법원 부장판사급이라는 법원의 자체 조사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한 법원의 잇따른 영장 기각은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거나 영장심사 단계에서 미리 유무죄를 예단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여기에 굴하지 않고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 사건에서 상대방에 해당하는 박근혜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한 결과, 이들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던 시절 각종 직권남용 행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취지의 진술과 물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박병대·차한성 전 대법관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강제징용 소송 지연과 법관 해외파견을 맞바꾼 의혹이 외교부 회의 기록 자료와 당시 회의 참석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덮을 수 없을 만큼 드러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 내부에서도 윤인태 전 부산고법원장이 ‘고영한 전 대법관이 판사 연루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특정 재판을 더 진행하라고 했다’고 검찰에 털어놓는 등 ‘윗선’을 지목하는 폭로성 진술이 다수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비록 양 전 대법원장, 박·차 전 대법관의 자택 등에 대한 영장이 기각돼 압수수색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법원이 소극적이나마 법원 최고위층에 대한 강제수사를 허용한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사실상 모든 재판거래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이 차량에 제한해서나마 발부된 것은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피의자 성격을 인정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은 압수수색 결과물을 분석한 뒤 관련자들의 소환 조사 시점 등을 신중히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의혹의 정점에 있는 핵심 인사들에 대한 압수영장이 잇단 기각 끝에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한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그것도 일부만 발부됨으로써 수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또한 수사에 비협조적인 차원을 넘어 사실상 수사 방해 행위에 해당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는 상황에서 마지못해 영장을 내준 듯한 법원에 대한 비판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해 한꺼번에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정도로 혐의가 소명됐다고 인정한 셈”이라며 “아쉬운 점도 크지만, 수사에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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