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속 10여명 구한 불법체류자…출국 앞둔 딱한 사연

화마 속 10여명 구한 불법체류자…출국 앞둔 딱한 사연

김태이 기자
입력 2020-04-20 14:51
업데이트 2020-04-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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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서 주민 대피시킨 알리씨
화재현장서 주민 대피시킨 알리씨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난달 23일 강원 양양군의 한 3층 원룸 화재 현장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구조하다가 화상을 입은 카자흐스탄 출신 알리(28)씨. 2020.4.20
양양 손양초등학교 장선옥 교감 제공
화재 현장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구조하다가 화상을 입은 불법체류 외국인이 출국을 앞두고 있다는 사연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카자흐스탄 국적의 알리(28)씨.

알리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11시 22분께 친구를 만나고 귀가하던 중 자신이 거주하던 강원 양양군 양양읍의 한 3층 원룸 건물에서 불이 난 것을 발견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입주민 10여 명을 대피시켰다.

2층에 있던 한 여성이 대피하지 못한 것을 발견한 알리씨는 옥상에서 가스관을 잡고 내려가 구조를 시도하다가 목과 손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알리씨는 화재 현장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소방차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알리씨는 현장을 떠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화재 현장에서 알리의 선행을 지켜본 손양초등학교 장선옥 교감을 비롯한 주민들은 수소문 끝에 알리씨를 찾아내 속초의 한 병원을 거쳐 서울의 한 화상전문병원에 입원시켰다.

주민들은 그때서야 알리씨가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7년 관광비자로 입국한 이후 월세방을 전전하며 공사장 등에서 번 돈으로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 두 아이를 부양하고 있다는 사연을 털어놨던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십시일반 700여만원을 모아 알리씨 치료를 도왔다.

이 과정에서 알리씨도 불법체류 사실을 법무부에 자진 신고했다.

알리씨는 현재 퇴원해 통원 치료 중이며 다음 달 1일 출국을 앞두고 있다.

출국을 전제로 한 자진 신고였기 때문이다.

한편 알리씨의 이러한 딱한 처지를 알게 된 주민들은 양양군에 의사상자 지정 등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나섰다.

의사상자로 인정되면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보상금과 의료급여 등의 최소한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양군에 도움을 요청한 장선옥 교감은 “불이 났던 원룸이 내가 사는 집 바로 옆집이다 보니 당시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며 “딱한 처지에 놓인 알리씨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에 이 같은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양양군에도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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