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로 옥고’ 장준하 유족에 7억8천만원 국가배상 판결

‘긴급조치로 옥고’ 장준하 유족에 7억8천만원 국가배상 판결

신성은 기자
입력 2020-05-13 15:56
업데이트 2020-05-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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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 시절 ‘긴급조치에 국가배상 불가’ 판례에 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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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장준하 선생
박정희 정권에서 긴급조치 1호 최초 위반자로 옥고를 치른 고(故) 장준하(1915∼1975) 선생의 유족에게 국가가 7억8천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김형석 부장판사)는 장 선생의 유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총 7억8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인사인 장 선생은 1973년부터 유신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다가 이듬해 긴급조치 1호의 최초 위반자로 영장 없이 체포·구금됐다.

이후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공소제기부터 확정판결까지 6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절차가 진행됐다.

그는 협심증에 따른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1975년 경기 포천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재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39년 만인 2013년 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장 선생에게 적용됐던 긴급조치 1호는 2010년 대법원에서 위헌·무효라고 판단했고, 헌법재판소도 2013년 위헌 결정을 했다.

이렇게 위헌 결정이 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민사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은 그동안 엇갈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대법원이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라며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당 판례가 나온 이후 일부 하급심 판결들이 이에 반대하는 해석을 내놓긴 했으나 상당수가 대법원 판례를 따르고 있다.

장 선생 유족의 민사 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양승태 사법부의 논리를 따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대통령은 긴급조치 1호 발령이 유신헌법에 부합하지 않고, 국민들의 기본권이 직접적으로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발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로 인해 실제 피해를 본 장 선생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단순히 긴급조치 발령에 그쳤다면 국민에 대해 정치적 책임만 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위반 행위에 대해 수사·재판·형의 집행 등이 예정돼 있고 실제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정치적 책임만을 진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긴급조치를 발령한 행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만을 지고 수사·재판 등에 대해서는 개별 공무원의 책임을 부인한다면, 대통령이 당초에 무효인 긴급조치를 고의·과실로 발령해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민사상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이는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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