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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가 놓치고 후회한 행복의 순간들

이어령 교수가 놓치고 후회한 행복의 순간들

유대근 기자
입력 2022-03-05 14:00
업데이트 2022-03-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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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마음읽기 20회> 행복이 강박이 될 때

모두에게 삶의 목표가 돼버린 ‘행복 찾기’
물질적 조건들, 행복에 결정적이지 않아
가진 것에 의미 두는 노력이 더 중요
“가까운 사람과 밥먹는 순간이 최고 행복”
등산 때 정상을 밟을 생각에만 빠지지만
낙엽 밟는 소리, 실바람의 촉감, 마주치는 절경들
가까운 반경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행복
시대의 지성 고 이어령 교수의 후회
“중요한 글을 쓰느라 외면했던 어린 딸의 인사
그 순간 몸을 돌려 딸을 안고,볼에 입맞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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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장관이 지난 2018년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이어령 전 장관이 지난 2018년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편집자 주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오늘하루 마음읽기’에서는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마음속 이야기를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명이 친절하게 읽어 드립니다. 스무 번째 회에서는 적지 않은 이들이 시달리는 ‘행복 강박’에 대해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이야기해드립니다.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이 ‘행복해야 한다’는 경직된 사명감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거창한 행복이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든, 행복이란 우리 삶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할 목표처럼 됐다.

새해 벽두에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말을 생각해보자. ‘happy new year’ 이지 않은가. 그 해의 첫 시작의 순간을 행복이라는 수식어로 감싸 안는다. 우리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다시 오지 않을 결정적 기쁨의 순간을 공유하고, 사람들은 하트 표시를 누르며 응답한다. 경쟁적으로 서로가 행복함을 뽐내는 것이다.

때로 행복이라는 단어 뒤에 서로에 대한 질투심이 작동한다. 우리에게 찾아온 순간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다 여기고, 더 나아가 행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삶이라고 규정짓는다. 행복해야만 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삶의 최우선 목표로 무심코 여기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조금 비틀어 보면 우리 삶의 강박이기도 하다.

●행복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국내외 학계에서는 행복의 기원, 성질, 방법론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행복이라는 감정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과 연결지어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뤄진 부분도 있다.

행복의 과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책 중 하나가 <행복의 기원>이다. 저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는 왜 행복감을 느끼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동안 쌓여온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저자는 우선 행복이 거창하고도 위대한 그 무엇, 혹은 돈과 명예와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만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을 구성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물질적이고 현실적 조건들은 실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데 있어 그리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작은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새로운 것을 얻으려는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 즉, 객관적 조건보다 주관적 만족감이 훨씬 우선한다.

또 행복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 목표가 아닌,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도구적 수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사회적 동물로 만들고, 더 매력적인 존재로 꾸며 결국 더 길게, 더 오랫동안 생존하게 돕는다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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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국 박사가 쓴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 제공
서은국 박사가 쓴 ‘행복의 기원’
21세기북스 제공
우리는 행복을 일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거대하고 위대한(?) 대상이라 생각해왔다. 그래서 보편적인 삶의 목표로 경외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은 우리 인간의 생존과 진화를 위한 양념 같은 존재였다니. 굳이 행복을 비틀린 시선으로 보자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던 행복의 본질과는 꽤 차이가 있는 시각이다. 모든 가치가 그렇지만, 맹목적 우상화는 우리의 시야를 좁아지게 만드는 법이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까운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이라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결론을 남긴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과 매일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지만 그 순간을 행복하다 여기기란 쉽지 않다. 의례적인 행위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고, 때로는 아주 소소한 것이며,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삶 곳곳에서 행복의 순간을 발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어쩌다 보니 행복한 순간이기를

높은 산을 오를 때 우리가 하는 실수가 있다. 정상에 어떻게 올라야 할지만 생각하다보니 발 밑에서 바스라지는 낙엽, 귀 밑을 간지럽히다 떠나는 실바람, 눈 앞에 순간순간 펼쳐지는 짤막한 절경들을 쉽게 놓치게 된다.

대단하고 거창한 목표는 삶의 중요한 방향이 될 테지만, 강박적으로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 이 순간의 의미 자체를 잊어버린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삶이란 먼 허공에 있기보다, 이 순간 바로 내 옆에, 내 팔이 닿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반경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곳곳에서 발견되어져야 한다.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찾아온다. 또 지금은 끔찍한 일인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다행스러운 일이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러니 순간 떠오르는 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하고 넓은 시각으로 눈 앞의 것들을 살필 필요가 있다. 행복이라는 필터로 경험을 받아들일 때, 순간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일들 또한 얼마든 행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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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볼을 비비며 사랑을 나누는 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 픽사베이 제공
아이들과 볼을 비비며 사랑을 나누는 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 있다.
픽사베이 제공
작고하신 이어령 교수의 저서,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는 절절한 후회의 장면들이 그려진다. 매일 밤, 그에게는 인생만큼 중요했던 글을 쓰느라 어린 딸의 인사를 외면했던 그 후회의 순간들을. 만약 그 순간의 작은 따뜻함을 알아차리고 몸을 돌려 딸을 안고, 눈을 맞추고, 또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면 얼마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았을까? 우리네 삶에도 의미 없을 것 같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순간들은 새로운 행복으로 얼마든지 채색될 수 있다.

행복을 좇다 보니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행복한 순간이 다가온다. 행복은 우리가 꼭 따라가야 하는 이정표라기보다, 삶의 순간순간에 포착되는 풍광에 가깝지 않을까. 행복에 대한 강박을 내려 놓고 마주하는 삶의 순간들을 둘러보자. ‘어쩌다 보니’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인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을 맡고 있다. 현직 의사들이 운영하는 정신의학신문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중증 질환은 물론 평범한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쉽게 설명해준다. 저서로는 <어른의 태도>, <나를 살피는 기술>이 있다.
유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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