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훼손했다”… 정치 개입 넘어선 대선 개입 규정

“대의민주주의 훼손했다”… 정치 개입 넘어선 대선 개입 규정

입력 2015-02-09 23:58
수정 2015-02-10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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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재판부 ‘원세훈 선거법 위반’ 판단 배경

‘국가정보원법 위반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라던 지난해 9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이 5개월 만에 ‘모두 유죄’로 뒤바뀐 데는 법원의 증거 채택 확대 영향이 컸다. 1심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던 국정원 직원의 트위터 계정이 2심에서 대폭 증거로 인정되면서 이를 통한 온라인 활동 분석 결과가 재판부 판단에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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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호위하는 보수단체
원세훈 호위하는 보수단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가운데) 전 국정원장이 9일 보수단체 회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항소심 재판정인 서초동 서울고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이날 법정구속됐다.

김명국 전문기자 daunso@seoul.co.kr


1심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1157개의 트위터 계정 가운데 175개만 증거로 인정한 반면 2심은 716개를 증거로 인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의 목적성(방향성)을 분석한 결과 2012년 7월 이후 정치 관련 글보다는 대선 관련 글이 많아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어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박근혜 후보로 확정된 8월 20일 이후부터는 해당 계정의 대선 관련 글이 급증하고 이와 연동된 트윗 활동도 늘어나는 등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 분석에 따르면 국정원의 전체 사이버 활동 중 정치 글 비중은 2012년 1월 95%였지만 2012년 7월 50%로 낮아져 대선 글과 동일한 비중이 됐고, 같은 해 8월에는 대선 글 비중이 77%를 차지했다. 대선이 치러진 같은 해 12월에는 대선 글 비중이 83%에 달했다. 이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2012년 1월 1일~12월 19일 전파한 트위터 글 27만 3192건을 분석한 결과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분석 자료를 통해 1심이 배척했던 “원 전 원장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 중 선거 개입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상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는 문제”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심리전 활동을 벗어나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이 사건 행위가 사이버 활동이라는 자신들의 주관적 평가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객관적인 성찰을 보여 주고 있지 않다”며 원 전 원장에 대한 실형 선고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사이버 활동은 헌법이 요구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외면한 채 국민의 정치적 의사 결정에 개입한 것”이라며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근본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기관이 사이버 공론장에 직접 개입해 일반 국민인 양 선거 쟁점에 관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해 자유롭게 논쟁하던 일반 국민들이 사이버 공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가 유죄로 본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그대로 인정했다.

앞서 1심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가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특정 후보자의 당선 혹은 낙선을 도모하려는 ‘목적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검찰이 국정원의 선거운동 시작점으로 제시한 2012년 1월에는 대선 후보자의 윤곽조차 명확하지 않아 특정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목표로 한 목적성이 없다고 봤다. 또 검찰이 제출한 트위터 계정 등 각종 증거 가운데 정치가 아닌 선거 관련 증거는 모두 목적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척, ‘정치에는 개입했지만 선거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애매한 판결을 내렸었다.

당시 법원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지록위마’(指鹿爲馬)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판결을 공개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당시 재판장이었던 이범균 부장판사는 최근 인사에서 고등법원 부장(차관급)으로 승진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2015-02-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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