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진출 2년여 만에 ‘꿈의 무대’ 진입한 기성용

해외진출 2년여 만에 ‘꿈의 무대’ 진입한 기성용

입력 2012-08-25 00:00
업데이트 2012-08-25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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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로는 10번째로 ‘꿈의 무대’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기성용(23)은 사상 첫 올림픽 4강과 메달의 쾌거를 이룬 축구 대표팀의 주축으로 맹활약한 선수다.

기성용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기영옥 씨의 역할이 컸다.

금호고와 광양제철고 축구부 감독을 역임한 아버지 기씨는 기성용을 일찌감치 호주로 유학 보내 선진 축구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도록 했다.

광양제철중 1학년 때 호주로 떠난 기성용은 4년 반 만에 귀국해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FC서울에 입단했다.

입단 첫해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으나, 2007년 세뇰 귀네슈 감독이 부임하면서 중앙 미드필더로 중용되기 시작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리그에서 2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팀의 간판스타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 축구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던 기성용은 2009년 여름 스코틀랜드의 명문 클럽 셀틱이 영입 의사를 밝히면서 유럽 무대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듬해 1월 본격적으로 셀틱에 합류한 이후 초반에는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기성용은 팀의 주장이자 주전 미드필더인 스콧 브라운의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발로 나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호평을 받았다.

그해 11월에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SPL)가 주는 ‘10월의 영 플레이어 상’을 받아 잠재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2010-2011 시즌 26경기서 3골을 기록하며 자리를 잡은 기성용은 지난 시즌에는 30경기에서 6골을 터뜨려 셀틱이 4년 만에 리그 정상에 복귀하는 데 일조했다.

스코틀랜드 리그에서는 3시즌 동안 총 66경기에 출전해 총 9골을 남겼다.

기성용은 2004년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된 것을 시작으로 20세 이하 대표팀 등을 거쳐 최근 런던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선수로서도 맹활약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나선 축구 대표팀에서 이청용(볼턴)과 더불어 ‘젊은 피’로 선배들의 뒤를 받쳤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인 박주영(아스널)과 주장을 맡은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과 함께 팀을 이끄는 역할을 해냈다.

특히 영국과의 8강전에서는 마지막 승부차기 주자로 나서 한국 축구의 첫 올림픽 4강 진출을 확정 짓기도 했다.

올림픽 동메달 획득으로 병역을 해결한 기성용은 더 큰 무대를 찾아나선 끝에 스완지시티의 손을 잡고 축구의 본고장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게 됐다.

박주영의 소속팀인 아스널이나 박지성이 주장으로 있는 퀸즈파크 레인저스 등이 관심을 보인다는 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주전 확보 가능성이 큰 스완지시티에서 새로운 축구 인생을 펼치게 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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